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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작은 신들
작은 신들
Little Gods by Tim Pratt
번역 김현우



"내가 계피의 작은 여신이면 좋겠어" 에밀리는 눈을 감은 채 향신료 코너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나는 에밀리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 특별히 주의 깊게 듣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반에서 복숭아 넥타 병을 집어 흔들며 코를 찡긋했다. 나는 그 안의 건더기가 신선한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단지 건더기일 뿐이다. 에밀리는 내가 본질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에밀리는 복숭아 넥타를 좋아하기에 나는 바구니에 복숭아 넥타 병을 넣었다.

"계피의 작은 여신이 되고 싶어" 에밀리가 재차 말했다. "아니면 흑설탕의 작은 여신도 좋아". 그녀가 팔짱을 끼자 은동 팔찌가 짤그랑거렸다.

"계피의 큰 여신이 아니라?" 나는 팔에 바구니를 든 채로 통로를 따라 걸었다.

"작은 것들에는 작은 신들이 있는 거야" 에밀리가 말했다. "당연한 거잖아." 그녀는 손가락으로 선반을 훑으며 내 뒤를 따라오다가 홍차 향을 맡거나 무설탕껌 통 뚜껑을 열어보려고 멈추곤 했다. 에밀리는 항상 재촉하고, 냄새를 맡고, 쓰다듬는다 - 그녀 말에 따르면 그녀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그러니까 큰 신들은 큰 것들을 위해 있다 이거지? 예를 들면...고래 같은 거를 위해?"

에밀리는 뒤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큰 거란 건 그러니까...뭐랄까...사랑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증오는 어때? 질투는?"

"맞아. 하지만 그런 것들의 신이 되고 싶지는 않아. 너무 큰 건 싫어...우와! 초콜릿 씌운 에스프레소 원두네!" 그녀는 기뻐서 소리쳤다.

"커피 원두가 제철인 줄은 몰랐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커피캔디 봉지를 집으러 달려갔다. 그녀는 밤새 깨어 있을 것이고, 나 또한 깨어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카페인을 잔뜩 섭취한 날이면 그녀는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담배를 피운 날이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풀이 죽어서 말한다.

에밀리가 춤을 추며 통로를 따라가자 긴 치마자락이 흔들거렸고, 깃단의 은방울이 짤랑거렸다. 그녀는 에스프레소 원두가 든 봉투가 마치 자기 가슴이라는 양 흔들어댔다.

"초콜릿의 여신은 어때? 마음에 들어?" 내가 말했다.

"물론이지. 그렇지만 더 구체적인 것으로 할래. 다크 초콜릿의 여신이라든가 멕시코식 핫초코의 여신이라든가 나무 숟가락으로 뜬 뜨거운 퍼지(초콜릿을 이용한 과자의 한 종류) 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건 너무 작잖아. 이 세상을 돌리려면 그런 작은 신들이 엄청 많이 필요할 걸."

"물론이지." 그녀는 즐거워하며 아무도 없는 통로 반대편을 슬쩍 보더니 봉투를 열어 커피콩을 하나 까고는 입에 하나를 던져 넣었다. "큰 신들은 - 추상과 이상의 신들 말이지 - CEO, 얼굴마담, 상위 관리자 같은 거야. 말하자면, 기쁨의 여신도 충분한 보상을 받긴 하겠지만 뜨거운 샤워의 신이나, 열정적인 섹스의 여신, 에인절 케이크(달걀흰자로 만드는 고리 모양의 케이크)의 화신(化身)이 없으면 뭘 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뭔가 멋지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 명확하고, 확실한 임무를 가진 여신 중 하나가 되고 싶어."

"사랑해." 갑자기 그녀에게 애틋함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검은 고수머리, 생각에 잠긴 모습, 자신이 직접 해와 달을 수놓은 옷을 입은 모습의 에밀리. 별자리를 읽을 줄 알고,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할 줄도 알며, 꽃에 생기를 불어넣을 줄도, 만돌린 음정까지도 맞출 줄 아는 나의 특이한 천사. 내 심장이 자신의 심장 소리에 맞춰 아름답게 뛰도록 만드는 에밀리. 그리고 생선찜의 작은 신들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작은 신들을 믿는 나의 에밀리.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꼭 쥐었다. 우리는 계산을 하러 갔다. 계산대 쪽에 뭔가 소동이 벌어진 듯 했지만 무슨 일인지 볼 수는 없었다 -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고성으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에밀리의 손을 잡아 끌고 계산대 쪽으로 갔다 - 그녀는 10초에 열 번은 주의를 딴 데 돌렸고, 그래서 나는 그녀를 빨리 집에 데려가 뜨거운 물로  함께 샤워를 하고, '그녀의 배꼽에 입 맞추는 일'의 작은 신들, '그녀의 머리를 감기는 일'의 작은 신들, '그녀의 얼굴을 만지는 일'의 작은 신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계산대에는 한 소년이 있었는데 고작해야 열일곱살 정도 같았다. '외로운 보안관'이 쓰는 것과 비슷한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할로윈이 끝나고 하는 세일에서 99센트 주고 산 것 같은 고무밴드가 달린 검은색 싸구려 플라스틱 마스크였다. 그는 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쪽저쪽으로 휙휙 겨누며 사람들에게 출구쪽에서 물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원을 위협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뇌가 파내지거나 말라 버린 듯 완전히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에밀리는 그 강도 소년이 아니라 키위와 열대과일이 진열된 쪽을 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그렇게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후우." 그녀는 내게서 손을 빼고는 과일 쪽으로 향했는데 그 방향은 소년강도, 총을 든 그 소년 쪽 방향이었다.

"에밀리, 안 돼!"하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눈꺼풀을 치켜들고 나를 향해 돌아서다가 사탕과 껌통이 가뜩 쌓인 곳에 부딪혔고, 그녀의 엉덩이가 판매대를 치면서 작은 사탕들의 산사태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총을 든 소년이 총을 치켜 들었는데 내 목소리, 움직임, 사탕 떨어지는 소리 중 어느 하나에 놀랐거나, 혹은 그 녀석이 시킨 대로 돈을 넣지 않고 당황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계산원 때문에 그저 짜증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고의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사고였는지 모르겠지만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악취(납의 작은 신, 퍼져나가는 가스의 작은 신)와 함께 총이 발사됐고 에밀리가 쓰러지면서 사탕 진열대에 부딪히는 바람에 사탕들이 그녀 위로 쏟아져내렸다. 그녀는 빗발같이 떨어져 내리는 잘 포장된 사탕들과 그녀 손에서 떨어진 작은 에스프레소 원두 봉투 위로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앞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소년강도, 살인자 소년은 도망쳤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소리로 앰뷸런스를 부르라고 말했다.

나는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복숭아 넥타 병이 내 발 근처에 떨어지며 깨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의 작은 신. 젖어버린 작은 조각들의 작은 신.



에밀리의 장례식이 끝나고 이틀 뒤 드디어 그녀의 부모님도 떠났고, 그제서야 내 머리 속 고통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모두 해결되었다. 나는 의자 하나를 뒷뜰 쪽에 놓고 거기에 앉아 작년에 에밀리가 만들었던 새집을 바라보았다. 종달새 한 가족이 잠시 거기 살았었지만 이제는 가고 없었다. 새집에는 그저 지푸라기와 나뭇가지, 실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때론 가슴이 그 새집처럼 빈 것 같았고 때론 뜨겁고 더럽고 끈적거리는 무언가로, 스토브에 데운 감기 시럽, 당밀이나 피 같은 것으로 걸쭉해진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시간도 삶도 정상이 아니었다. 시계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나는 울었다. 너무 흥분해 있거나 너무 냉정했다. 이불은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내 침대(우리 침대)에서는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실에 있는 의자에 머물면서 주목(朱木) 벽에 에밀리가 걸어놓은 그림, 우리가 슈퍼에 갔던 그 날 아침 에밀리가 꺾었던 - 이제 꽃병 속에서 죽어 있는 꽃들을 포함해 아무 것도 보지 않을 수 있도록 눈을 감고 있었다. 오직 내 눈꺼풀만 볼 수 있었다.

에밀리와 내가 함께 한 삶을 증명해주는 물건들 속에 있느니 주변의 평범한 세상 속으로 외출하는 편이 나았다. 에밀리는 이 집을 우리의 도피처, 우리만의 안전한 장소라 부르곤 했다. 그리고 나 또한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 집이 황량한 슬픔의 박물관이 되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잠시 하늘을 바라 보았다. 태양은 움직이고 있었고 차츰 내 목구멍이 말라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에밀리의 부모님이 떠난 후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물어 왔다, 왜 그토록 괴로워 하냐고, 영혼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는데 왜 버티며 애를 쓰냐고. 하지만 계속 그러는 편이,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편이 더 편했다.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 진한 퍼지(초콜릿을 이용한 과자의 한 종류) 굽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역겨울 만치 달콤한 그 냄새를 에밀리는 나보다 더 좋아했었다. 바로 그 순간 스토브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순간적으로 내 아내, 나의 에밀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돌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훨씬 키가 컸고, 검은 색 - 까마귀 날개 같은 검은색, 밤의 단면 같은 검은색 -의 아무 장식도 없고 은실 한 가닥 쓰이지 않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에밀리는 그렇게 어두운 색 옷은 결코 입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미 죽었다.

나는 검은 색 드레스를 입고 검은 색 머리를 한 이 여인이 누구인지, 왜 내 부엌에 있는지 궁금해하며 다가갔다. 하지만 사실 상관없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에밀리의 친구 중 하나겠지. 아니면 도둑인지도 모른다.

나를 향해 돌아선 그녀의 피부는 마치 설탕처럼 하얗고 창백했고, 나무 숟가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스토브 위에는 빈 주전자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마치 무언가를 젓는 듯 주전자에 숟가락을 넣고 움직이자 진한 퍼지 향이 퍼졌다. 갑자기 분노가 솟았다(그것조차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왜냐하면 최근 며칠간 가끔 날카롭게 날이 선 아픔이 지속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집에 들어와서 에밀리의 물건들을 만지고 있는 이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으르렁거리자 그녀는 쨍그랑 소리와 함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마치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듯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녀를 잡아챌 지, 때릴 지, 아니면 단지 팔을 꽉 잡을 지, 대체 어떻게 할지 몰랐지만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녀에게 닿기 전, 뜨거운 공기가 얼굴로 불어왔다. 진한 퍼지, 바닐라 쿠키, 향료, 빗물, 계피, 에밀리의 냄새가 나는 공기였다. 에멜리의 냄새가. 다른 수많은 냄새들 역시 하나같이 내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그 모두가 이미지와 순간의 단편들을 불러일으켰다. 일주일 전 달콤했던 기억들이 이제는 코르크 따개처럼 나를 비틀고, 칼처럼 찌르고, 내가 잃은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무릎을 꿇었고, 향기로운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나의 가슴은 비틀리고, 마치 흉곽 뒤에 무서운 게라도 있는 것처럼 쪼그라들었고, 또 발버둥쳤다. 나는 이마를 차가운 리놀륨 바닥에 대고 흐느꼈다.

냄새가, 냄새의 폭풍우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이며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여인을 찾았다.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스토브 위에는 주전자도, 숟가락도 없었다. 부엌에는 먼지 같은 냄새 외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문과 창문을 확인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모두 잠겨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잠갔던 기억이 없는 걸 봐서는 아마 에밀리의 아버지가 떠나기 전 잠근 것일 것이다.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는데, 슬픔에 빠져 천천히 움직이는 바람에 마치 불규칙한 궤도로 움직이는 거대하고 무거운 행성 같았다. 아마 그가 나를 위해 문과 창문들을 잠가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여자가 들어올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저 은신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이상해져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심지어 슬픔의 향기까지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젖은 커튼이 내 위로 드리워진 듯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어느 봄날 오후 슈퍼에서 아내가 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틀림없이 미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가장 가까웠던 최고의 동반자가 사라졌는데 굳이 제정신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새 같은 것이 움직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천장 각 구석과 가운데에 핀을 박아 놓아 커튼이나 캐노피 같아 보이는 검은 천 같은 것이 서까래 위쪽으로 있었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것이 뭔지 눈으로 확인하려고 애썼다. 잠시 후 나는 그것이 그냥 옷이 아니라 검고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란 것을 깨달았다. 여인은 천장 중앙에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불가사의토록 긴 치맛자락이 그녀 주위로 펼쳐져 천장을 덮고 있었다. 처음에 여인을 보지 못한 것은 그녀의 피부 색이 드레스만큼이나 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 색깔 또한 어두웠다. 그녀가 웃지 않고 있었기에 치아 색은 알 수 없었다. 이 여인은 물론 부엌에서 봤던 그 여인이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에선가 '자매로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지난 번엔 하얀 색이었고, 이번엔 검은 색이니까 말이다.

여인의 치마가 내려앉고 소용돌이치더니 나를 향해 떨어졌다. 숨이 두 배는 더 막혀왔는데 마치 진흙 속에 얼굴을 박고 누워 있는데 곰팡이 핀 젖은 매트리스까지 위에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숨이 막혀왔지만 천장에 있는 여인을 계속 응시하며 가까스로 일어났다. 마구 허우적대면서도 손은 램프 탁자 위에 문진을 찾고 있었는데, 그 문진은 하와이로 신혼여행 갔을 때 에밀리가 골랐던 흑요석으로 만든 것이었다. 상당히 무거워 보였지만 나는 이제 젖은 삼베조각 같은 것에 숨이 막히는 것에 화가 나 있었고, 가까스로 그 무거운 것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천장의 여인을 향해 돌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돌덩어리는 그녀의 배를 때리고 튕겨 나와 탁자 위에 떨어져 탁자에 금이 가게 했다. 여인은 까마귀처럼 꽥꽥거렸다. 그녀의 치마가 단번에 닫히는 창문 블라인드처럼 떨어져 내렸고, 그녀는 사라졌다. 이제 천장에는 방치된 거미줄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등을 기대 앉자 나를 압박하던 무게감이 사라졌고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떠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은 느낌이었고, 태양이 내 혈관을 가득 채운 것 같았다. 하지만 전율은 천천히 사라져 에밀리가 죽은 이후 느껴왔던 잿빛과 무심함을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잠이 들었다. 그것이야 말로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낡아빠진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난롯가에 앉아 주머니칼로 손톱을 다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는 순간 그가 목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 우리 가족이 다녔던 작은 교회의 시골 목사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머리는 검었고, 약간 헝클어져 있었으며, 눈썹은 진짜라고 믿기엔 너무 진했다. 얼굴은 중년처럼 보였는데 건강하고 힘이 넘쳐 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파란색이었고 빛나고 있었다.

“여어”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누구시죠?” 내가 물었다. 막 잠에서 깨어난 탓에 짜증이 났고, 이 이해할 수 없는 침입들에 짜증이 났고, 에밀리 없이 보내는 첫 주의 잿빛에서 날 멀어지게 하려는 이 모든 사건들에 짜증이 났다. 내가 몇 주나 더 견뎌낼 수 있을까.

“자네를 도와주러 왔네.” 그는 확신에 차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두 소녀가 자네에게 뭔가 재밌는 면이 있다고 말하더군. 그들을 볼 수 있다며?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사하러 왔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거고, 자네가 날 보고 있는 거지.” 그는 일어나 칼을 접고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중세 방식으로 절을 했다. “나는 슬픔의 왕이요, 죽음의 땅의 문지기, 그리고 불운의 도박사라네.”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들은…” 내가 말했다.

그는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저 작은 여신들, 시녀, 현장 근무자일 뿐이니 신경쓰지 말게. 부엌에 있던 한 명은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들의 여신이고, 검은색 큰 치마를 입은 하나는 무거운 마음의 여신이지. 그들은 신경 쓰지 말아. 나는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왜냐면 자네의…그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말일세. 자네는 우릴 볼 수 있어. 그건 자네가 특별한 사람이란 뜻이지. 자네는 불운 이상의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더러운 유리를 통해 관찰하는 것만 같았고, 모든 일이 수족관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슬픔의 작은 신들? 에밀리가 말했던 것 같은 기쁨의 작은 신들, 사랑의 작은 신들 같은 것일까? 이렇게 미쳐가는 건가? 내 아내가 상상했던 세계의 암흑판 세상에서 살게 되는 걸까? 이런 낡아빠진 양복을 입고 머리엔 기름이 낀 남자가 슬픔의 왕이라고? 대충 훑어봐도 호흡이 안 좋은 것 같고 웃을 때는 치아가 휘어있는 게 보였다. 눈은 빛나고 있지만 내게는 그저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떠있는, 무지개 빛으로 빛나지만 사실 그저 더러울 뿐인 기름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과대망상에 대해서는, 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대체 누구한테 자문을 구해야 하는 걸까?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은 후 몸을 앞으로 숙여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는 손을 거칠게 비벼댔다. “자, 에밀리를 돌려주면 내게 뭘 줄텐가?”

나는 마치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잿빛이 걷히고 은밀하고 절망적인 희망이 그 자리를 채웠다. “네?” 내가 말했다. “무슨 뜻이죠?”

그는 짜증이 난 둣 한쪽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흥정을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거야, 그렇지 않나? 자신의 죽은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지하세계에 간 남자 이야기나 자신의 연인의 잘려나간 사지를 모아 신에게 그를 살려달라고 했던 이야기 말이야. 고전적인 이야기네만 이제 자네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걸세. 하지만 이건 흥정이야. 자네가 에밀리를 되돌려 받길 원한다면 대가가 필요해.”

“뭐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이게 과대망상이든,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든 상관없었다. 에밀리 없는 세상에서 제정신인 것보다는 에밀리가 있는 세상에서 미친 채 살아가는 편이 더 나았다. 물론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나의 아름다운 아내가 살아있지 않은 세상은 정상적인 세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왼쪽 눈을 빼겠나? 주머니칼에서 날이 튕겨 나오게 하고는 내게 그 빛나는 날을 보여주며 그가 물었다. 그는 씨익 웃더니 고기가 붙은 뼈다귀를 입에 물었다. “오딘이 지혜를 얻기 위해 포기한 것이 바로 그거였지. 자네의 아내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나는 칼과 칼날, 내가 겪게 될 고통, 영원히 잃게 될 시력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난 에밀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 눈을 포기할 것인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만약 내가 미친 거라면, 이런 걸 보고 들을 만큼 미친 거라면, 나는 완전히 미쳐 구원을 얻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라면, 이 제안이 진짜라면, 내가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찌 주저 하겠는가.

“그 칼을 주세요.” 손을 내밀며 내가 말했다. “눈을 빼겠습니다.”

그는 껄껄 웃었다. “멋지군! 하지만 자네는 너무 간절해서 흥정할 줄을 모르는 것 같아. 자네의 왼쪽 눈은 별 가치가 없어. 귀로 대신 값을 치를 수도 있어. 반 고흐는 매춘부를 위해 자신의 귀를 잘랐었지. 자네 아내는 창녀의 몸뚱아리보다 가치가 있나, 응?”

나는 분노하여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조롱하지 마세요. 나는 내 아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내놓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말한 바로 그 사람이라면 내가 그렇게 하리란 것을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오, 그렇긴 하지.” 그는 갑자기 벨벳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썩은 벨벳이었다. 나는 좀먹고 누더기가 된 붉은 벨벳을 상상했다. “알고 있네. 그럼 자네의 생명을 주는 것은 어떨까? 자네의 죽음으로 아내의 목숨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말이지” 그러자 갑자기 칼날이 마치 고양이 발에서 발톱이 나오듯 자루에서 나오며 10인치, 그러니까 1피트 길이로 길어졌다. “자네의 눈에, 뇌에 이 칼날을 찔러 넣을 수 있겠나?”

나는 주저했다. 죽는다고? 내 손으로 직접?

“그렇지.”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칼을 접으며 말했다. “자네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무슨 말이냐 하면 자네가 그녀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서 자네 목숨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야.”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화가 나서는 아니었다.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더 불안하고 날카로운 느낌 때문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어요.”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이, 그 총을 든 녀석이…”

“그 녀석은 그저 돈을 원했을 뿐이야” 그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에밀리에게 소리를 질러서 그 소년의 주의를 그녀에게로 돌렸어. 그녀를 놀라게 하고 그 소년까지 놀라게 한 거지. 자네가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자네는…” 옳은 비난이었기에 나는 그의 치아 사이의 뼈다귀처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네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을 거야.”

그가 옳았다. 그가 절대적으로 옳았다. “그 칼을 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에밀리가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곤 칼날을 튕겨 올리며 내게 건네주었다…

날개 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둘 다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나비들이 있었다. 아니, 나비가 아니었다. 하얀 나방들이었다. 그 남자는, 슬픔의 왕은 킁킁거리며 말했다. “빌어먹을.”

먼지 냄새가 났다.

어떤 여자가 부엌에서 방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녀의 피부는 울리브 색이었고, 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황금색이었다. 그녀는 길고 검은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묶고 있었고,  하얀 바지와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비단 잠옷인 듯 했다. 또한 그녀는 맨발이었다. 그녀는 난로 위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겁고 피할 수 없는 실망감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당장 나가.”

“저는 단지 제 일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요.” 그는 칼을 접으며 투덜거렸다.

“가버려”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명령은 마음이 근육을 움직이도록 하는 명령,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명령이었다.

남자는 나를 쳐다보더니 한 번 쏘아보고는 머리부터 해서 굴뚝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의 발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슬픔의 왕을 질책한 이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면죄의 찰나에, 에밀리의 구원을 위한 내 희생의 순간에 그를 쫓아낸 이 여자가 증오스러웠다.

“그는 왕이 아니에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 속에는 회색 돌조각들을 바라보고, 먼지 가득한 대기를 응시해온 듯한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그는 허세나 부리는 치졸한 자예요. 그런 자를 부하로 둔 것이 부끄럽군요.” 그녀는 소파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녀의 겸손함과 과장되지 않은 몸동작이 어쩐지 믿음을 주었다. “나는 슬픔의 여신이에요.”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했지만 사용하는 단어만 보더라도 아까의 그 남자가 비슷한 말을 하던 때 느꼈던 그런 거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죄와 흥정의 작은 신이에요. 슬픔의 필연적인 부분이죠. 그러니까 고용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조력자들보다 교활하죠. 당신이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자 당신과 직접 거래하려 했던 것이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모든 절차를 위반하려 했고 그렇게 했어요. 그가 한 일에 대해 사과드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말했던, 에밀리를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거, 그러니까 그 흥정 말인데요, 당신과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슬프고 어두운 빛이 가득했기에 나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긴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신뢰했지만 그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신들이 진짜 존재한다면 내세도 존재하는 거죠? 만약 죽어서 내세에 가면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삶과 관련된 것만을 관장해요.”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슬픔과 관련된 것이 내 일이고, 그게 전부예요. 슬픔의 이유, 슬픔의 해소 같은 것들이요…그러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선 말해줄 수 없어요.”

화는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할 뿐이었다. 내가 화가 나지 않는 이유가 그녀가 그걸 바라지 않기 때문인지, 그녀가 그렇도록 날 조종하고 있기 때문인지 알고 싶었다.

“이건…비정상적이에요. 당신의 상황 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들어본 적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 드문 일이에요. 당신이 경험한 상실 같은 것은 가끔 더 깊은 이해, 더 깊은 시야를 끌어내죠. 그리고 당연히 모든 것을 변화시키게 되요.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은 우리를 봄으로써,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일에 개입하게 되는 거예요.”

“당신이 날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완전히 망가져버릴 지도 몰라요.” 그러나 의도했던 것만큼 극적인 말은 아니었다.

“그럴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하얀 허벅지 부분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동의했다. “당연히 그렇겠죠. 당신은 상실감 때문에 망가져 버릴 거예요. 아무 생각도 못할 것이고, 기운도 없겠죠. 만약 우리의 도움이 없다면…그 상태에서 빠져 나오긴 힘들 것 같군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죠.” 내가 말했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빛이 그녀를 비스듬히 비추고 있어서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상관 없어요. 에밀리가 없다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씁쓸하게 “그녀가 죽은 건 내 잘못인 걸요.”라고 말했다.

“도와줄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때 나방의 날개짓 소리가 다시 들렸다. 하얀 나방들이 창문가에 있었다. “절차에 어긋나지만…당신이 잊도록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의 기억과 고통을 가져가는 거예요. 이 집과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녀는 크게 몸짓을 하며 말했다. “슬픔의 동력장치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부드럽게 작동하는 장치는 아니에요. 이제 당신의 그 볼 수 있는 능력이 그 장치의 작동을 망가뜨리고 있어요. 당신을 진정시켜 드릴게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줘요. 당신의 슬픔은 내가 모두 가져갈게요.”

이제 나방들은 집안에 들어와 그녀의 머리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나방은 눈물을 마시며 살아가는데, 눈물을 마시기 위해서 눈물이 흐르는 눈 주위에서 윙윙거린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 나방들이 그 나방인가. 물론 그렇겠지. 이 나방들은 내 고통을 마시고 상처가 났던 곳에 하얀 펄럭거림을 남겨 둘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제안이고, 선물이었다.

나의 잿빛 마음 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싫어요.” 내가 말했다. “싫어, 싫어, 싫어! 잊고 싶지 않아. 난 그녀를 사랑했어! 그걸 없던 일로 만들 순 없다고!”

그녀는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손을 모으더니 자신의 손끝에 입을 맞췄다. 나방들은 한 데 모여 잠시 웅웅 대더니 촛불이 꺼지듯 사라졌다. “그럼 다른 방법으로 하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내 무릎 위에 부드럽게 손을 올려놓았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지냈다. 내가 휑한 침대에서 덜덜 떨고 있을 때는 나를 잡아주었다. 내게 물을 먹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약은 먹지 못하게 했다. 대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노래를 불러줬는데 사라진 문명의 장례 미사곡이 아닌가 의심스러웠지만 어쨌든 자장가 역할을 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했다. 내가 그녀를 어찌 의심했겠는가? 그래, 물론 그랬다. 나는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녀는 내 침대보를 빨고, 먼지를 청소해 천에 붙어있는 에밀리의 향기를 없앴다. 그리고 커튼을 열어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나는 상실감, 나의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침울해 하며 들었다. 그녀는 내가 분노하는 것을 보고, 내가 손등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벽을 주먹으로 치는 것도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의 참을성 있는 눈빛 덕에 진정하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 집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지만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에밀리의 죽음 직후 며칠간 존재했던 잿빛이 걷혔다. 나는 에밀리 없이 용광로에, 푹푹 찌는 웅덩이에, 삶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2주가 지나자 여신은 더 이상 매일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그림들, 옷가지들, 악기, 책 등을 살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물건들은 내 눈으로 묻히는 것을 본 그녀의 육체처럼 에밀리가 이 세상에 남긴 유물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나눠 일부는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냈고, 일부는 기증했으며 일부는 옷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그녀를 다시 한 번 묻은 것 같았다.

여신은 며칠에 한 번씩 방문했다. 나는 부서지고 찢겨져 이제 다시는 온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들로 위안을 주겠다는 제안은 결코 다시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문에 그녀가 미웠지만 한편으론 그 사실에 감사했다. 그녀는 슬픔의 여왕이었고, 내가 그녀의 왕국의 어둠과 터널과 그림자들을 지나가기를,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빛을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인간이었던 적이 있는지, 배우자가 있었는지, 뜨거운 날 얼음물의 여신, 아픈 근육에 바르는 따뜻한 오일의 여신, 슬픈 연인의 폐에 있는 숨의 여신이 되고 싶어했던 에밀리의 소원이 이뤄졌는지 물었다. 여왕은 내게 팔을 두르며 대답했는데, 그녀를 둘러싼 먼지 냄새는 달콤하기까지 했다. “나는 항상 지금 그대로의 나였어요”, “다른 질문들에 대해서는…아무도 모르죠.  당신 부인이 그렇게 됐을 거라 상상하는 것으로 기쁘다면 그렇게 하세요.”

위로의 말이긴 했지만 냉정한 면이 있었고 또한 너무나 진실된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날 밤 내게 홍차를 한 잔 따라주고 이마에 키스를 한 후 떠났다. 나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가 직접 날 돌봐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절차가 원래 슬픔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나의 첫 번째 행복의 순간은 에밀리가 죽은 지 3개월 후에 찾아왔다. 나는 바닷가 절벽 근처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만에 있는 배들을 보고 있었다. 배들은 내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에밀리와 항해를 해본 적도 없었고, 돛단배의 우아함에 대해 그녀가 특별히 찬양한 적도 없었다. 물 위의 각양각색의 돛들을 바라보며 나는 나 자신이 미소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독으로 변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 진정한 미소였으며 에밀리가 말했던 것이나 했던 일들과 관련된 미소가 아니었다. 삶의 여유가 주는 미소였다.

나는 바닷가 절벽 위에 한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같은 존재감, 같은 크기 때문에 처음엔 그녀가 슬픔의 여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하얀색이 아니라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얇게 비치는 천으로 짜여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절벽을 따라가며 가볍게 춤을 췄다. 그녀가 잠시 내게 얼굴을 돌린 그 순간은 마치 긴밤이 지난 후의 새벽별, 떠오르는 태양, 사막에 내리는 갑작스런 물세례 같았다. 나는 내 마음 가장 깊은 방에 있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기쁨의 여신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다른 여자들과 남자들이 따랐는데 그들은 색색의 옷, 깃털, 숄, 모자,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기쁨의 여신의 수행원들은 그녀의 작은 신들이었다. 기쁨의 여신은 물위의 대기 속으로 뛰어올라 빛 속으로 산화하여 부유하는 광채의 티끌이, 파도 위에 반사되는 태양빛이 되었다. 작은 신들도 그녀를 뒤따라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웃어대며 뛰어 올랐다. 나는 그들이 빛이 되어가는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이 여전히 미소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작은 신들 중 마지막 하나가 절벽 위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별과 달 모양이 수놓아진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검은 고수머리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숨이 멎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저 윤곽, 저 머리, 저 자태를 알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바람에 실려오는 희미한 계피 향을 맡았다. 그 어떤 냄새도 이보다 달콤할 수는 없었다.

그 작은 여신(계피의 작은 여신, 한 남자의 사랑의 작은 여신)은 절벽에서 뛰어 올랐다. 그리고 빛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광채가 수면 위의 물방울에 스며들 때까지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주는 작은 신들,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신들, 기다림의 작은 신들에게 입모양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며 걸어갔다,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2-0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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