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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4
노인은 뱅이 가져온 콜라를 들이키고는 오렌지 쥬스를 물과 사진이
들어있는 솥에 콸콸 쏟았다.

"자, 이제 사진이 보이지 않지?"

"네, 그렇네요."

"그래, 조금 잊혀진 것 같은가?"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진이 안 보이게 됐다고 잊을리가요."

"하긴 그새 잊는다는 것도 우습겠군. 그럼 일단 이 솥 안에 대고
'미안해'하고 세 번 외치게나."

"네? 약을 만드는데 말이 필요한가요?"

"마법이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오하다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마치 장난같습니다만."

"자네 이 약이 필요하지 않은  건가? 어서 '미안해'라고 세 번을
외치도록 하게나. 꼭 진심을 담아서 말해야 하네.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뱅은 천천히 솥으로 걸어갔다. 다소 미심쩍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마법이란 심오한 것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마법이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일들도 필요하다. 하물며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워내는 엄청난 마법이라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뱅은 솥 앞에 서서 자신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말았어야 했던 말들, 상처주고 괴롭혔던 말들. 오직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단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했던 말들.
못된 말을 내지름으로써 결코 다시는 사랑할 수 없도록 자신을
돌려놓기 위해 했던 말들. 그래서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했던 말들. 결국 너무도 간절히 그녀를 원하는
지금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말들. 너무나 가벼워서
어쩌면 무게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의심되는 말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조차 그 무거운
말의 무게마저 가볍게 만들어버렸던 그 이전의 유치하고 더러운 말들.
하지만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에
견딜 수 없어서 내뱉어버린, 그래서 영영 멀어지게 만들었던 말들.

뱅은 그 말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그런 말을 한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녀도
미웠다. 그렇지만 이내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세상에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있고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그런 말들을
여태 수없이 떠들어 왔음을 깨달았다. 흐릿한 물 아래 가라앉아 있는
그녀의 사진. 그토록 예쁘게 웃던 그녀에게 건넸던 농담들. 그리고
예쁜 말들. 약을 먹으면 그 말들도 함께 잊혀질테지. 그건 너무나
슬프다. 어쩌면 이미 모두 잊혀졌는지도 모른다. 못된 말들에
묻혀져 이미 그녀의 기억 속에서 모두 지워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소중한 순간들이었는데. 그토록 환한 미소였는데.
그토록 예쁜 마음이었는데.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는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방울 떨어지던 눈물이 턱끝에
매달린 순간 참아온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뱅 자신조차 듣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아주 작은 한마디가
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랑해.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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