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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7
"다음엔 뭘 넣어야 합니까?"

"자네가 그 아가씨에게 선물해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뭔가?"

"분홍색 돼지 인형을 몇 개 사줬습니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군요."

"좋아 그럼 저기 구석에 가서 분홍색 돼지 인형을 가져오게."

"대체 여긴 없는 게 없군요. 구석에만 가면 필요한 게 딱딱 나오는군요."

"없는 것도 있다네."

"뭐가 없는 건지 궁금하군요."

"자네가 간절히 바라는 그 아가씨가 없지 않은가?"

"있습니다 여기."
뱅은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탕탕 치며 말했다.

"그래, 거기에 있군 그래. 그 아가씨 마음에도 자네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좋겠네. 얼른 가서 돼지 인형이나 가져오게."

뱅은 구석으로 가 분홍색 돼지 인형을 가져왔다. 그녀는 분홍색
돼지 인형을 유달리 좋아해서 뱅은 지나가다 분홍색 돼지 인형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에게 그것을 사주고는 했다.

"갖고 왔습니다 인형."

"그래? 그럼 그 인형의 표정을 따라해보게."

뱅은 여태 워낙 이상한 일을 반복해왔던지라 잠자코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다.
돼지는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를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따라하자니 볼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뱅은 최대한 표정을
비슷하게 하다가 뭔가 부족하다 싶어 손가락으로 코를 올려세웠다.
이제야 조금 만족스러웠다. 그녀에게 보여줬더라면 깔깔대며 한참을
웃었을텐데.

"어떻습니까? 조금 비슷해보입니까?"

"똑같군 똑같아. 이제 돼지 목에 진주를 걸고 목을 비틀게."

"진주도 있습니까?"

"저기 책상 위에 있지 않은가."

그 말을 듣고 책상을 보니 정말 진주가 있었다. 분명 아까는
공책과 와인 잔밖에 없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눈에 확 띌
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진주가 놓여 있었다.

"돼지 목에 진주라 이겁니까?"

"그렇지 그렇지. 이제 뭘 좀 아는군."

"이것에도 뭔가 의미가 있습니까?"

"마치 자네 같지 않은가 돼지 목의 진주가. 아니지, 자네가 돼지고
그 아가씨가 진주지. 자네는 정말 자네가 그 아가씨에게 어울린다고
확신하고 있나?"

"네 확신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거지?"

"제가 사랑하니까요."

"세상에는 짝사랑도 많아. 아니, 짝사랑이 더 많을 걸세.
사랑한다고 어울리는 건 아니야. 보통은 자신에게 과분한
사랑을 기대하지. 자네도 그렇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네, 확실히 과분합니다. 그녀는 너무 예쁘니까요.
하지만 과분한만큼 사랑한다고 자신합니다.
제 모자름을 그 사랑으로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건 자네 생각일 뿐이지. 그 아가씨의 대답을 듣고 싶네만
그럴 수가 없어 유감이군. 물론 누군가가 누군가한테
과분하다는 건 주관적인 문제겠지. 그래서 자네는 자네의
사랑을 증명할만한 뭔가를 보여준 적이 있나?"

"네, 그림을 그려서 그녀에게 주었었죠."

"그림이란 건 아무나 그릴 수 있지 않은가?"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조금 특별한 그림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간절한 마음으로 그렸어요. 하지만 그녀는
그 그림을 받고도 표정 하나 안 보이더군요. 그 순간이 결정적이었죠.
그 순간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거든요.
그래서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오게 됐죠.
물론 그 전에도 제가 못된 말들을  많이 했지만 그 순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그림이었는데?"

"그건 부끄러워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 아무튼 이제 돼지 목에 진주를 걸고 비틀었나?"

"네, 했습니다."

"돼지가 꽥꽥 울던가?"

"인형이 울리가 없잖습니까."

"자네는 아까 꽥꽥 울었잖아."

"조금 울긴 했지만 꽥꽥 울지는 않았습니다"

"나한테는 그렇게 들리던 걸. 아무튼 이제 돼지 인형에 뽀뽀를 하고
아까처럼 솥에 넣게."

"근데 정말 이걸 제가 먹게 되는 겁니까?"

"그럼 자네가 먹게 되지. 내가 먹겠는가."

"네, 네. 좋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넣는 건 조금 먹을만한 거였으면 좋겠군요."

"이것저것 따지지 말게. 자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걸 바라고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넣었습니다."

"그래, 그럼 아까 자네가 그렸다는 그림을 다시 그려보게나."

"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몇날 며칠을 밤낮으로 해서
만들었던 거라고요."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서 그려보게."

"다시 한다고 해도 그때의 그 마음으로는 할 수 없을겁니다."

"지금은 자네 마음이 부족하다는 의미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에 한 번 한것과 그걸 다시 하는 건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까? 다시 한다고 해도 그때와 같을 순
없을겁니다."

"자네 마음이 그때와 같다는 건 확신하나?"

"그때보다 훨씬 더 사랑합니다. 진심입니다."

"신기하지 않은가? 자네는 예전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데
예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의미가 같지 않다는 것이. 사람의 일이란 것이 그래.
그 아가씨도 생각하고 있을 걸세. 자네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일세. 그리고 그 아가씨가
자네의 그림을 받으며 조금 너무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네가 던진 그 못된 말들이란 것이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단지 그 아가씨가 그 말들을 잊게 된다고 해서 자네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용서해도 괜찮은 걸까?
이미 자네는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했고
그것으로 그 아가씨는 상처받았네. 자네가 약을 먹음으로 인해
그 상처가 지워진다고 해도 자네가 그랬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
자네는 자네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보지?"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사랑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돌이킬 수 있다면
정말 다시는 그런 말들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들이 그녀에게
상처준 것 이상으로 제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제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녀 없이 저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해놓고 여전히 사랑한다 말하는 뻔뻔한 자네와
그 그림처럼 다시 해도 처음과 같지 않을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쩔텐가?"

"저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그녀는 믿어주지 않지만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행복하게 해줄 겁니다...
근데 돼지 인형으로는 안 되는 겁니까? 그 그림도 다시
그려야 합니까?"

"아니. 자네 말대로 그 그림은 다시 그린다고 해도 결코 같은 것이
될 수 없으니까 돼지 인형으로 충분할 걸세. 돼지 인형이야
돼지 인형이란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

"마지막 말씀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아무튼 다행이군요."

"그림을 다시 그리지 않아도 되서 말인가?"

"아니요. 돼지 인형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요. 저보고 돼지 인형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나저나 진주는 좀 아쉽군요. 그녀에게
선물했더라면 좋았을텐데..."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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