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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오이디푸스의 재판
"친부 살해자이며, 근친상간이라는 파렴치한 죄를 지은 오이디푸스에 대한
재판을 지금부터 진행한다. 피고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진실도
말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변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변호인과 증인을
선임할 권리를 갖는다."

땅. 땅. 땅.

재판관의 봉이 세 번 울리자 혼란스럽던 재판정은 묘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이디푸스 편에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검사 측에는 다소 지쳐보이는 사내가 하나 앉아 있었다.  재판정이 완전히
조용해지자  지쳐보이는 사내가 일어나 단호한 태도로 발언했다.

"피고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친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파렴치한 중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으며 이러한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피고의 죄는 죽음만으로는
갚지 못할 만큼 엄청난 범죄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에 죽음
이상의 것은 없으며 우리가 법을 집행하는 것은 죄와 같은 무게로 그것을
징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함인 바 저는 피고 오이디푸스를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당장 사형시키자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여왔다. 지쳐보이는 사내는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에야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피고 측 반론을 시작해 주십시오." 판사가 말하자 피고 오이디푸스 옆에 있던
늙은 남자가 일어나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로 변호를 시작했다.
그는 늘씬하고 키가 컸으며 냉정한 분위기와 근엄한 표정을 갖고 있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 파이드루스께서 하시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파이드루스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위하여 이성의 극단까지
탐구하여 진리를 찾고자 하셨지요. 파이드루스께서 찾으신 길은
그 어떤 극단보다도 일상에 놓인, 눈 앞에 놓인 작은 삶의 조각의
소중함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파이드루스께서
찾으신 그 길은 너무도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파이드루스께서는
그 길을 걸으시며 도중에 잠시 자신을 놓고 다른 인격으로 살아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검사 파이드루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파이드루스께서는 인간에게 놓여진 운명이라는 것을 넘어선 곳에 있는
진리를 찾아내고자 하셨습니다. 저는 파이드루스께서 걸어오신 길과
그 고난을 넘어서 찾아낸 또 다른 진실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칭찬과 피고에 대한 변호가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요?" 파이드루스는 못마땅하다는 듯 힐난하는 눈빛을 던졌다.

변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하나의 존재로서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카산드라는 자신의 예언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킬레스는 자신의 복사뼈에
화살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로맹 가리는 권총으로 자살했으며
링컨과 케네디는 암살 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도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그 어떠한 인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테베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임을 아폴로 신전의
예언자로부터 듣고 방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그의 부모인
라이오스의 아오카스테 역시 같은 예언을 듣고 오이디푸스를 버렸지요.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특히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차마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없어 산에 내다 버렸습니다.
물론 그 산이 다소 위험하기는 했고, 그들은 아기의 복사뼈에 쇠못을
박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아이를 죽이는 길을 택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 모든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또한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랑 도중 우발적 사고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또한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하여 테베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이 고의로 저지른 일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미 내려진 예언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운명의 길을 따랐을 뿐입니다. 저는 그렇기에 피고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피고 뿐 아니라 이 자리의
그 누구도 같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 조금 덜 가혹할 뿐이지요."

변호인의 반론이 끝나자 재판정이 잠시 술렁였다. 검사 파이드루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변호인을 향하며 말을 꺼냈다.
"변호인께서 저에 대한 찬사로 반론을 시작하셨으니 저 또한 변호인에 대한
찬사로 답하고자 합니다. 변호인께서는 정신분석학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이론을 만들어내셨지요. 그리고 그에 대한 영감을 피고로 얻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저명한 이론에 따르면 친부 살해와 근친상간에
대한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의 극단적 발현이라 할 수 있겠지요.
변호인의 이론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20세기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는 점에 찬사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인은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변호인께서 주창하신 이론은 말 그대로 하나의 이론일 뿐입니다.
그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 변호인이 이론을 주창한 이래 수많은
수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칼 구스타프 융이나 아들러 같은 학자들은
변호인의 이론보다는 다른 곳에서 인간 행동의 근원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변호인의 이론은 모든 것을 성적인 욕망, 거세와 관련된 공포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점에서 다소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변호인의 위대한 이론에 대한 다소의 무례한 발언은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인께서 피고의 변호를 맡으신 것은 아마 변호인의 이론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근원적 욕망은 운명과 같은 것이고 모든 인간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 테지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갑니다. 물론 운명의 틀이란 것은 무거운 짐이지만
그 운명의 틀대로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위대한 존재드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근원적 특성, 삶을 둘러싼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삽니다. 피고에게 무거운 운명의 짐이 주어졌음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운명의 짐이 피고에게만 주어졌는지,
피고는 과연 그것을 피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애초에 그 운명의 짐이란 것이
-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란 것이 -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드는군요."

"제 이론에 대해 찬사와 의심을 동시에 보내주시는군요. 굳이 저의 이론을
언급하시기도 하셨고, 저 또한 처음부터 제 이론을 통해 피고롤 변호하고자
하였으니 잠시 제 이론을 말씀드려보기로 하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존재를 지탱시켜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존재를 밀고나가는 것은 인간 내면에 놓인
욕망입니다. 그 욕망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리비도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을 나아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물론 그 욕망의 발현형태는
모든 인간에게 있어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의 기본적인 욕망의
핵심은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그들에 의해
키워지며 변형되는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친부모에게 키워지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말을 끊었지만 변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먹여지고 키워집니다.
특히 성적인 욕망을 갖추게 되고 내면의 욕망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어린 시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인간은
거세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성과 같은 성기가 없다는 사실로부터 비슷한 두려움을 겪게 되지요.
물론 그것의 발현 양상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다행히 피고가 남성이므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어쨌거나 인간은 두려움을 안게 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고 사회화시키며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피고의 경우는 매우 불행한 경우였습니다.
그는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극복되고 사회화되는 욕망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시키고 말았습니다. 물론 매우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이 경우는 말 그대로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 우연히 실현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피고에게 죄가 있다면 우발적인 살인에 대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테베의 왕이 됨으로 인해 이 또한 빗겨 갔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이 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그렇게 드물지는
않습니다. 물론 도의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것은 자신의
원래 자리를 찾아간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가 자신의
의지로 벌인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운명의 장난에 대해서 일일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는 쟝세니스트가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지도 않고
우리 삶이 정해진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근원적 욕망, 우연한 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운명의 수레. 그 가운데 놓인 피고 오이디푸스를 그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변호인이 긴 반론을 끝내고 자리에 앉자 검사가 다시 일어났다.
그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다니 옅은 미소를 띤 채 발언을 시작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심령의 존재를 믿었고, 아일랜드의 어셔 대주교는
나름의 계산으로 지구의 나이가 4천년 밖에 안 되었다고 주장했지요.
모든 이성이 진실을 바로볼 수는 없으며 때로는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이 믿는 것에 더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프로이트 씨께서
자신의 이론에 천착하여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 씨께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오이디푸스의
경우를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또한 떨칠 수가 없군요.
변호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근원적
욕망이 잠재한다. 그것의 발현형태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지요.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것이 있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으며
피고의 경우는 여러가지 불운한 정황이 겹쳤고, 사건이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 것은 단지 운명이 선사한 극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 거고요.
그리고 피고가 원래 자신의 운명대로 테베의 왕이 된 것처럼
결국 모든 것은 항상성의 원리처럼 본래 주어진 길로 결국은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운명의 큰 틀은
개인의 자유의지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이 전쟁이나 역병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러나 1차 대전은 한 청년의 총격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2차 대전은
히틀러라는 한 인간의 광기어린 욕망의 실현의 장이었지요.
저는 이제 피고 오이디푸스에게 묻겠습니다.
피고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까?"

그러자 여태 단 한마디도 않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오이디푸스가 입을 열었다.
"네, 저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운명의 큰 수레바퀴를
벗어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대답은 다소 비장하게 들렸다. 파이드루스는 침을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피고는 시지프스를 아시겠지요? 시지프스는 끝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언제나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자유의지란 것은 없는 것일까요? 그는 운명에 굴복해
그토록 고통스러운데도 계속 돌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일까요?
돌이 절벽에서 굴러 떨어질 때, 아니 돌을 굴려올리는 매 순간
생각하겠지요. 왜? 어째서?
아닙니다. 알베르 까뮈가 그의 저서에서 말했듯이 시지푸스는 자신의
의지로 돌을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너무도 가혹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돌을 밀어올리는 것밖에 없다면 그는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행함으로써 운명에 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고도 자신의 운명에 대항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변호인이 큰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정말 그럴까요? 이제 정말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점을 말해볼까 합니다.
피고는 정말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자 했습니까? 정말로 피고의 가혹한
운명은 피고 자신이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요? 피고 자신은 시지프스처럼
운명을 똑바로 직시하고 그것을 이겨내고자 했다고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저의 명예를 더이상 더럽히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두 눈이 그대로 있었다면 불타는 듯이 보였을 것 같은
기세로 오이디푸스는 격렬히 항의했다. 그러나 파이드루스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피고가 아폴로 신전에서 들은 신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게 될 것이라는 점, 둘째는 자신의 어머니를 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첫 번째 신탁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피고는 정말 그 신탁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고 확신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인이 범죄라는 점은 차치한다 해도 피고는 단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그 신탁을 빗겨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재판정이 잠시 소란스러워 지자 재판장이 일어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소란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자 프로이트가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변호인의 말씀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변호인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계십니다.  피고는 당시 방랑자인 동시에 쫓기는 신세였으며,
그때 그 일은 우발적인 사고에 불과합니다.
피고는 갑작스런 상황과 분노로 인해 살인은 저질렀습니다. 게다가 길을
가다 시비가 붙어 누군가를 죽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친부였다니
그것이야 말로 운명이란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피고는 신탁을 피할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으셨던
것 같군요. 그런 신탁을 듣고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했다면 피할 수도
있었던 문제 같은데요? 그렇지만 좋습니다. 피고측의 의견을 백 번 받아들여
그 사건이 우발적인 사고에 불과하고 운명의 장난이었다는 점에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는 어떻습니까? 피고는 정말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걸까요?"

"네, 저는 정말로 이오카스테 왕비가 나의 어머니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나 파이드루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번재 신탁을 피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피고는 결혼도 우발적으로 하셨나요?
자신의 어머니 뻘 여자와 결혼하면서도 신탁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으셨던 겁니까?
너무나 간단하지 않습니까? 피고가 정말 그 저주받은 신탁을 피하기 위해서
방랑을 택했던 것이라면,
진정으로 그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고 싶습니다. 피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운명에 순응하는 방법을 택했거나,
진정으로 그 운명을 피하고자 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재판정의 무거운 공기 속에 이제 오이디푸스의 편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모두가 파이드루스의 말에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프로이트는 다소 자신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일어나 반론을 시작했다.

"피고가 방랑을 떠난 것은 분명 신탁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자신을 키워 준 폴리버스와 메로페가 자신의 친부모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라이오스를 죽이고도 자신의 아버지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하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랑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피고에게 죄가 있다면 자신에게 내려진 그 가혹한 신탁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던 진실이 너무 적었고,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충분히 벗어났다고
스스로 믿은 것 뿐입니다.
피고의 죄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지와 의심의 부족이 그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한 사내에게 최악의 형태로 나타난 것 뿐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제가 만든 이론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그 욕망을, 신탁을, 운명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가련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초라함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시민으로서는
오이디푸스에게 유죄를 선고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기에는 우리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나 생각합니다."

"검사 측과 변호인 측에서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이만 재판을 마칠까 합니다.
자유의지와 운명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결론지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우리는 운명이라는 굴레에 놓여있습니다만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서로에게 어느 정도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분명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재판을 열고 피고의 죄에 대해 심판하고자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판결이든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너무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운명에 맡기고자 합니다."

재판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이성적 판단을 포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에게는 이보다 더 나은 결론을 내릴 용기가 없습니다.
피고에게 운명이 가혹했던 것만큼 이 판결 또한 제게도 너무 가혹하군요.
그래서 저는 동전을 던져 이 사건의 결론을 내고자 합니다.
정말 피고가 한 일들이 운명의 결과였다면 피고의 생명 또한
운명이 정해진 길을 따르게 되겠지요. 앞면이 나오면 사형, 뒷면이 나오면
피고는 자유입니다. 동전이 어느쪽으로 떨어졌는지는 검사와 변호인께서
함께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판결을 마친 재판장이 손짓을 하자 구석에 있던 작은 남자가 동전을
가져와 재판장의 손에 금화를 하나 올려놓았다. 재판정이 잠시 술렁였지만
재판장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서는 침을 몇 번이나 삼킨 후에야
천천히 눈을 감으며 동전을 높이 던져 올렸다.
그 순간 모두가 침묵 속에 그 광경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동전은 높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하며 힘차게 날아오랐다.
그리고는 이내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몇 번인가 튕기며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제 모두들 일어서서 서로를 밀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동전은 청중석과 반대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어서 동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전은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굴러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마침내 동전 구르는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을 때 침을 삼키는 소리
또한 멈추었다.  동전이 멈춘 곳은 파이드루스와 프로이트가 서 있던 곳 한가운데였다.
마침내 동전이 마지막으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눕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들 파이드루스와 프로이트를 찾았다. 그러다 술렁이는 소리가 시작되더니
점차 그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동전을 확인해야 할 파이드루스와 프로이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은 동전이 떨어진 곳에서 가장 가까이 서있는 사람에게로
모아졌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동전을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찌른 자, 테베의 왕, 친부살해자,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에게는 동전이 쓰러진 방향을 확인할 눈이 없었다.


2011.07.03.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2-04 21:03)

M :: 친부를 살해 하는건 그렇지 않은 남자를 살해하는 것 보다 더 큰 범죄일까요?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는게 죄일까요?  [201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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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확인할수 없는건 아닌거같아요 만져보면 알잖아  [2011/07/09]
Giverny :: 응. 원래 결말은 이거 아니었어. 처음 읽었을 때 마지막 순간의 느낌을 그렇게 읽었으면 만족.  [2011/07/10]  
Name :    Memo : Pa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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