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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9
"이제 약이 슬슬 완성되어 가는군."

"그렇습니까? 뭔가 번잡하긴 했지만 들어간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약이란 건 필요한 성분만 들어가면 되는 거야.
중요한 건 거기에 담긴 마음과 주문이지."

"마법의 주문 말입니까?"

"그래, 마법의 주문이지."

노인은 힘차게 솥 안의 것들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마지막 제일 중요한 걸 넣자고."

"무엇을 넣어야 하죠?"

"자네."

"네? 농담이시겠죠. 저를 드시려고요?"

"물론 농담이지. 자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뭔가?"

"그녀입니다."

"젊은이다운 발상이네만 다른 것을 생각해 보게."

"제 자존심? 아니, 그건 넣을 수가 없겠군요."

"물론 넣을 순 없겠지만 좋은 생각이야. 자존심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지. 하지만 그걸 너무 소중히 여기지는 말게.
그것에 집착하다보면 더 소중한 걸 잃게 돼. 자네는 분명
자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 아가씨에게 상처주는 말들을
했겠지. 그렇지 않은가?"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 아무튼 내가 한 말을 귀담아 듣기를 바라네.
그럼 다시 생각해 보게. 물론 물건으로."

"그녀에게 선물받았던 카메라 스트랩인 것 같군요.
사실 저는 셔츠와 넥타이를 받고 싶어서 몇 번인가 암시를 줬는데
전혀 알아차리지를 못하더군요."

"그걸 지금 가져오지는 못할테니 다시 저기 구석에 가서 꺼내오게.
분명 파란색이었지?"

"아니 카메라 스트랩도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게 파란색이었던 건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것도 마법의 힘인가...음....정말 놀랍군요.
아무튼 어서 가져오겠습니다."

뱅은 구석에서 카메라 스트랩을 찾아 꺼내왔다. 파란색 카메라 스트랩은
뱅이 그녀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때 그녀가 사준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를 너무도 분명히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뱅은 그걸 몰랐다. 파란색 카메라 스트랩은 뱅 자신의 마음이
부족했던 그 시간 속에서 뱅을 사랑해주었던 그녀의 마음을
증명해 주는 물건이었다.
뱅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카메라 스트랩을 손에 쥐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그토록 많은 증거가 있었는데도 자신은 몰랐었을 뿐이란 사실을.


"자, 이제 그걸 솥에 넣게. 마지막으로 주문만 외우면 돼."

"넣었습니다. 어서 외우시죠."

"아냐, 내가 아니라 자네가 외우는 거야."

"저는 마법에는 문외한입니다."

"시끄럽네. 시키는 대로 해. 일단 먼저 자네가 제일 아쉬워했던 걸 말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뱅은 솥으로 걸어가 솥 아가리에 대고 말했다.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나를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자꾸 네가 나를 사랑한 적 없다는 기분이 들어..."

"말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가장 미안했던 걸 말하게."

"나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사랑하면 되는 거였는데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자꾸
네게 뭔가를 강요했던 것 같아. 그렇지만 이제는 알아.
내가 원하는 건 내가 꿈꾸는 대로의 네가 아니라 그냥 너야.
내가 무엇을 원하든 네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알겠어."

"이제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싶은 말 한마디를 더 하게."

그 말은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한 번도 직접 해주지
못했던 그 말은 그에게는 사실 아주 두려운 것이었다.
뱅은 그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말은 뱅에게
너무나 무거운 것이어서 다른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 말의
무게만큼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에는 그 말을
평생할 수 없을 거라 믿기도 했다. 살아가며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하지 않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가벼운
말들을 많이 한다하더라도 그 말의 무게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다. 삶을 살아가며 한 번 혹은 두 번 그 말을 하게 되는 그 순간은
너무나 엄청난 순간일 거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말이
터져나오려는 순간이 몇 번 있었어도, 그녀가 그 말을 간절히
원해도 결코 하지 않았고 그 말을 결국 하지 않았음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몰랐다. 그 말은 아무리 해도
그 어떤 말보다도 무겁고, 그가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말한 것과 다름 없음을. 중요한 것은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을 때 몇 번이나
하고 싶었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자면 뱅은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이라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을 이미 했어야 했다.
그가 그녀에게 그려준 그림에 수천 번이나 담았던 그 말은
이미 너무나 늦은 것이었고 이제 그녀에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말에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다. 그리고 적절한 대상이 있다.
그는 그 기회를 몇 번이나 지나쳤고, 그가 살아오며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 쉽게 내뱉는 것보다는
나았을지 몰라도 결코 잘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뱅을 위해
몇 가지 변명을 하자면 뱅은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고, 그녀를 잃은 후에는
그 말을 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이미 너무 늦었기에 그녀는 뱅이
그 말을 하려고 했을 때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뱅이 마지막 말을 던졌다.

"사랑해."

이 유치하고 흔하디 흔한 마법의 말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테니
더이상의 지지부진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간다.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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