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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8
"이 약을 어떤 이유로 드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난 그렇게 말한 기억 없네."

"아니라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자네와 같은 이유였지."

"어떤 말들을 하셨길래 그 약을 드셨습니까?"

"자네가 알 것 없네."

"그럼 결과가 어땠는지라도 말씀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나는 자네처럼 돌이키기 위해 약을
먹었던 것이 아니야. 나는 단지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내가 말로 줬던 상처를 씻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 사람이
내게 돌아올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네. 내가 원한 건
단지 그녀가 내게 받은 상처를 다 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뿐이었어."

"그러셨군요. 그럼 지금 제 모습이 한심해 보이실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했지.
나는 왜 힘들게 약을 만들어 먹고는, 내가 했던 좋은 말들마저
다 잊게 하고서는 그녀가 돌아오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야. 가장 슬픈 건 말일세, 내가 그녀에게 했던
온갖 다정한 말들이 잊혀졌는데도 나는 그 말들을 더이상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더군. 처음에는 몰랐지.
그냥 그녀가 이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행이라 여겼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해주고 싶은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지. 그래도 나는 참았다네.
다시 같은 말들을 또 하게 될까봐 두려웠거든.
내가 했던 안 좋은 말들을 애써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웠놓고는
내가 다시 또 그런 말들을 하지는 않을까 불안했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으신가요?"

"글쎄..."

"그러면 그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 돌아간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을 걸세."

"어째서입니까? 돌아가신가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자신 없네. 같은 상처를 또 주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그 '돌아가신다면'이란 말 좀 그만할 수 없겠나?
자꾸 내가 죽을 거란 말로 들리잖나."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냐, 그건 죄송해하지 않아도 돼. 쓸데 없는 걸 물어본 걸 죄송해해야지."

"그렇다면 그것도 죄송합니다."

뱅은 그렇게 말하고 옛날 일을 떠올렸다.
처음 만나게 된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의 말에 그녀가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화가 이어지다가 누군가 한심한 농담을 던졌다.
분위기가 이상해질 법도 했는데 그때 그녀가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한 덕에 모임은 즐겁게 끝났다.
사실 처음에는 그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말투와 목소리가 뱅이 귀에 너무나 생생했다.
며칠 동안 그녀의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아 뱅이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
그렇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뱅이 방금한 말투와 느낌이 그때 그녀의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추억에 빠진 뱅이 씁쓸한 미소를 짓자 노인이 외쳤다.
"자, 어서 약을 만들자고. 자네가 나처럼 노인이 되기 전에 말일세."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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