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90articles,
 Now page is 1 / 7pages
View Article     
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fin
"마지막 말도 했나?"

"네, 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이걸 젓는 동안 쉬고 있게나.
응고될 때까지 저으려면 한참 걸릴 거야."

"아닙니다. 여쭙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또 '돌아가시면'을 반복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혹시...말입니다. 혹시 제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아니, 자네 이름을 내가 알리가 있는가. 안 물어봤잖아.
나갈 때까지 자네 이름은 뱅이라네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감께서는 제 추억이 담긴 2001년산 라포레와 에세조를
와이너리에 갖고 계셨죠. 그리고 분홍색 돼지 인형과
파란색 카메라 스트랩도 갖고 계셨습니다. 물론 영감님이
마법에 능통하신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제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모두 갖고 계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혹시..."

"혹시 뭐 말인가?"

"아닙니다. 그리고 영감님은 제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항상 알고 계시더군요. 마치 제가 어떤 심정인지, 제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어떤 실수를 했는지도 알고 계시는 것 같았고요.
처음 제가 그녀의 사진을 보여드렸을 때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사진을 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감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말해줄 수 없네."

"그럼 영감님이 사랑하셨던 분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것도 말해줄 수 없네."

"왠지 제 생각이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여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영감님은 제게 무엇이 필요할지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지, 모두."

"영감님은 코카콜라 제로를 좋아하시고, 지금 만드는 이 약을
한 번 드셨고,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뱅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저도 계속 기다려야 하는 운명입니까?"

"뭘 기다린다는 건가?"

"했던 말을 돌이킬 수 있는 약을 건네줄 젊은이를요."

"아니, 그건 아니라네."

"어째서죠?"

"내가 말했잖나. 나는 결국 그녀에게 내가 했던 말을 지울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해버렸다고. 하지만 자네는 그녀를 기다릴 거라 하지 않았나.
그녀에게 매달릴 거고 평생이 걸려도 그럴테지.
이 약을 먹고나서 그녀가 잊게 될 아름다운 말들을 다시 그녀에게
들려주게. 그녀가 잊을 것 이상으로 들려주게.
자네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이제는 후회없이 모두 말해주게. 그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말게."

"그러면 그녀는 돌아올까요?"

"아마도...하지만 아주 오래 걸릴지도 몰라.
내가 자네를 기다린 것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오래 걸려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죠?"

"그래야지..."

노인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솥 안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제 완성이 됐군. 이걸 먹도록 하게."

"행운을 빌어주세요."

"그래, 행운을 빌어주지. 세상 누구보다도 더 간절하게."

.
.
.

뱅은 약을 먹고 작은 집을 나섰다. 사리프가 6-26번지의 작은
문을 나서기 직전 뱅은 배웅나온 노인에게 물었다.

"후회하시나요?"

"뭘?"

"사랑했던 걸요."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네."

"그럼 오래 전 그날 사랑에 빠진 걸 후회하시나요?"

"아니, 조금도...그럼 잘가게."

"네, 감사했습니다."

삐그덕 소리를 내며 작은 문이 닫혔다.
그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2008년 11월 16일.
쉬지 않고 써내려 간, 내 평생 가장 길게 쓴 글.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2:13)

Name :    Memo : Pass :  



No
Subject
Name
Date
Hit
90    작은 신들 Giverny 2011/02/15  386
89    해치와 선녀 Giverny 2011/12/15  398
88    오이디푸스의 재판 [5] Giverny 2011/07/03  497
   # fin Giverny 2008/11/17  488
86    # 9 Giverny 2008/11/17  414
85    # 8 Giverny 2008/11/17  417
84    # 7 Giverny 2008/11/17  441
83    # 6 Giverny 2008/11/16  452
82    # 5 Giverny 2008/11/16  416
81    # 4 Giverny 2008/11/16  408
80    # 3 Giverny 2008/11/16  409
79    # 2 Giverny 2008/11/16  367
78    # 1 Giverny 2008/11/16  394
77    fictionary #2 Giverny 2009/12/28  480
1 [2][3][4][5][6][7] Next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life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