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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1
가로등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으슥한 거리에 한 남자가 걷고 있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걸음걸이에서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 남자는
분명 잃어버린 뭔가를 되찾으려 하거나 뭔가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골목을 급히 돌아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검은 트렌치 코트에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담배를 거만하게 물고 있었다. 불안한 걸음걸이의 남자가
다가오자 트렌치 코트를 입은 남자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던졌다.

"그래, 무슨 일이십니까?"

"약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빠르게 말을 던졌다.

"무슨 약을 말씀하시는 거죠? 아시다시피 약은 종류가 아주 많습니다.
지나간 기억을 잊는 약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과 길에서 마주치지
않게 해주는 약도 있고, 추위를 느끼지 않는 약도 있고요."

"내가 필요로 하는 건 내가 했던 말을 없던 것으로 해주는 약입니다."

트렌치 코트 남자가 깜짝 놀라며 마침내 불안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많이 놀란 듯 했다.
"그런 약은 없어요. 터무니 없는 걸 바라시는군요."

"그런가요? 그렇지만 난 아주 간절합니다."

"누구나 간절하기 때문에 약을 찾죠. 약은 아주 비싸니까요.
그리고 약을 먹은 후에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계시죠?
걸음이 빨라지는 약은 나중에 다리에 무리가 갑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긴장하지 않게 하는 약은 심장에 안 좋고요.
지나간 기억을 잊게 하는 약 같은 경우는 다른 기억도 같이 잊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말씀하신 자신이 한 말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약은 제가 아는 한 존재하지도 않지만 아마 있더라도
부작용이 상당할 겁니다."

"어째서죠?"

"자기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자신이 타인에게 했던 말들을 없던 것으로 만드려면 타인에게도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거든요. 하지만 타인에게 그 부작용이
가지는 않습니다. 약을 복용한 사람이 모든 부작용을 감수하게 된다는
것이 제1법칙이거든요."

"그건 누가 정한 법칙이죠?"

트렌치 코트 남자는 거만한 표정으로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을 이었다.
"마법약리학 제 1법칙은 확고한 거예요. 열역학 제 2법칙만큼이나
단순하고 분명하죠. 아무튼 고객님이 원하시는 약을 구하신다고 해도
그 부작용은 엄청날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 약의 엄청난
부작용을 혼자서 다 감당하셔야 할테니까요. 어쩌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약을 꼭 구해야 해요."
남자는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요? 혹시 그 약을 만들 줄 아는 분은 안 계시나요?"

트렌치 코트 남자는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며 대답했다.
"글쎄요, 나는 정말 그 약을 구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정말 큰일 날지도 몰라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시면 다른 약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했어요.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요.
모든 말들을 다 해버리고 난 후에야 내가 실수한 걸 깨달았는데,
그 말들은 정말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이었거든요."

"조심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직장에서 상사 욕을 하셨나요?
흥분해서 부모님께 대드셨나요? 뭐, 지금 말해봐야 소용없긴
하겠군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트렌치 코트 남자는 그 말을 듣고는 다소 샐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잠시 관자놀이에 둘째 손가락을 올린 채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연애문제라...그렇죠. 약을 구하는 사람들의 40%는 그런 이유 때문에
약을 찾죠. 당신은 운이 좋군요. 아니, 아직 운이 좋다고는 말 못하겠군요.
아무튼 나도 비슷한 문제로 한참 마음이 아팠으니 당신이 필요로 하는
약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분을 소개시켜드리지요. 하지만 그 분이라고
그 약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만들 수 있더라도
당신에게 그것을 만들어 주실런지도 의문이군요."

불안한 남자는 환한 표정을 짓더니 트렌치 코트 남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일단 소개만 시켜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을테니까요."

"나는 당신에게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으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당신은 그 약으로 만족 못하실 것이 확실해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소개시켜드리지요.
사리프 가 6-26 번지를 찾아가세요. 제로가 보냈다고 하세요."

"그게 당신 이름인가요?"

"아니요, 암호죠. 코카콜라 제로. 그 양반이 그걸 좋아하거든요."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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