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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Giverny
Homepage   http://everever.net/utopia
Subject   # 2
사리프 가는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에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활기가 없었는데 세상과 인연을
끊은 고독한 노인들이 집안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세상에
골몰하고 있을 듯한 곳이었다. 6-26번지는 골목 중간 쯤에
있었는데 단층의 목조건물로 아무런 특징이 없어서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한 번도 와본적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될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어느 늦은 오후 그 6-26번지의 작은 문을 두드리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똑. 똑.
문을 두드리자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요?"

"제로가 보내서 왔습니다."

"뭐? 제로라고? 그래, 들어오시게."

불안했던 남자가 사리프 6-26번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키 작은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이마가 조금 벗겨진 것을
제외하고는 무성한 백발로 머리가 덮여져 있었다. 이마에는
심오한 패턴을 연상시키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피부는 탄력이
있고 등도 곧았다. 노인은 미심쩍어 하는 듯한  남자를 힐끔
바라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콜라는 사왔는가?"

"네? 아니요. 사오지 못했습니다. 콜라를 사와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지금 가서 바로 사오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농담일세. 근데 무슨 일로 오셨는가?"
노인의 말투는 딱딱하지는 않았지만 부드럽지도 않았다.
삶의 대부분 일에, 특히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는 노인이 분명했다.
마법약을 제조하는 노인이라면 평생 그것에 몰두해서 세상일
따위는 제쳐두고 두문불출한 채 살아왔을 것이 분명했다.

"약을 만들어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노인의 무심한 말투에 불안해진 남자는 간절해 보이는 눈빛으로
서둘러 대답했다.

"그래 어떤 약을 말하는 겐가?"

"제가 했던 말들을 돌이킬 수 있는 약입니다."

"뭐라고? 자네 지금 뭐라고 했는가?
자네가 했던 말들을 돌이키는 약이라고?
허허허, 그런 건 없네. 그런 건 없어."

"네? 정말이십니까? 저는 그런 약이 꼭 필요합니다.
만약 그런 약이 있다고 해도 부작용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약을 먹을겁니다. 그 약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래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던 겐가?"
노인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습니다. 그것도 많이요."

"그래, 그랬겠지. 그러게 말을 잘 골라서 하지 그랬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말들을 해버림으로 인해서
제 자신의 방향을 돌리려 했거든요."

"하지만 말이란 말을 한 사람이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네.
말을 들은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 반응하지.
말을 한 사람은 그 반응에 대해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어."

"네, 권리 같은 것은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이미 잃어버린 채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돌이켜보려 했던 말들이 무심히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게 되자 저는 그 말들을
해버렸습니다. 절대로 하지 않았어야 했던 그 말들을요."

"그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훌륭하군. 하지만 말이란 건
말일세. 무게가 있는 것이라네. 자네가 일생동안 하는 말의 무게가
정해져 있고 자네가 한 말의 수만큼으로 나눈 몫이 각각의 말의
무게가 되지. 물론 자네가 말을 할 때 얼만큼 진지했냐에 따라
일정한 가중치가 부여되긴 하지만 그 가중치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야.
아무튼 내가 보기에 자네는 지나치게 말이 많았었나 보군.
그래서 자네가 한 말들은 너무나 가벼웠던 거고."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남자는 침울한 표정으로 시인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말이란 가볍거나 무겁거나 상관없이
말을 들은 자의 의지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지. 우리가 내뱉은
말에 그 어떤 의지가 달려 있을지라도 그 의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말을 던진 자의 몫이 아니야. 다시 말하자면 말이 무겁냐 가볍냐보다는
어떤 상대에게 어떤 말을 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거지.
말이 가벼운 경우 그만큼 말을 한 자의 의지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 그건 그만큼 의미 없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던진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냥 잊어버리게. 기억을 잊게 하는 약은 좋은 게 하나 있지."

"그 약은 먹지 않겠습니다."

"그냥 먹는 게 좋을 거야.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다른 여자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나?"

"먹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고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바보로군. 그 여자가 처음이었나?"

"아닙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그래, 이미 세 번이나 사랑했다면 네 번째라고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이었으니까요."

"아마 그 전의 두 번도 진심이었을 걸세. 단지 자네가 진심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했기 때문에 진심이 아닌 것이 되었을 뿐이지.
사랑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냐. 일종의 강박관념이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시는 군요.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젊은이의 낙관적 애정론을 믿어보도록 하지.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상대에게도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가 한 말들을 돌이키려 하는 겁니다."

"그 말들만 돌이키면 자네를 다시 사랑할 거 생각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제가 어느 정도 진심인지는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젊군 젊어. 만약 자네가 원하는 약을 먹은 후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텐가?"

"그것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약을 만들어 주도록 하지. 하지만 약을 먹은 후에도 자네의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게."

"네? 정말 약을 주시는 겁니까? 그런 약이 있긴 있었군요."

"그래, 그런 약이 있지. 하지만 나도 30년 간 만들어 보지 않았다네.
자네가 아까 말했듯이 부작용이 너무 심하거든."

"효과는 확실한 거죠?"

"그래, 확실하네. 내가 보증하지. 그 약은 여태까지 단 한 번 만들었어.
만드는 것도 복잡하고 오래 걸리지. 그래도 일단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알아두는 것이 좋을 걸세."

"어떤 부작용이든 상관없습니다만 들어두어 손해볼 것은 없겠죠.
어떤 부작용입니까?"

"자네가 했던 좋은 말들도 잊혀질 거라네. 좋은 말과 나쁜 말은
기억 속에 따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거든. 좋은 말과 나쁜 말은
서로 뒤엉켜 있어. 하지만 그 좋은 말과 나쁜 말은 단지 뒤엉켜
있는 것 뿐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쁜 말들만
지워버린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네.
자네가 내뱉었던 그런 끔찍한 말들이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겠지? 세상은 미묘하고 복잡해.
그 중에서 말이란 건 특히나 그렇지."

"그렇군요. 아무튼 어서 만들어주십시오. 어느 정도 희생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전에 그 약을 먹은 사람이 후회했었나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해."

"그 사람은 누구였나요?"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군."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2-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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