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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참 기쁘다

아침 일곱 시 이십육 분에 수서 역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나는 서둘러 무료 일간지를 몇 개 챙겨 본다.

시간이 넉넉할 것만 같은데 막상 나와보면 금세 통근 셔틀이 온다.

이번 달에 상번한 태웅이가 내게 경례를 하고 나는 졸린 눈으로

인사를 받는다. 그리고 자야하나 신문을 봐야 하나 고민하는 새에

어느새 셔틀은 부대 정문 앞.

어느새 모든 것이 익숙하다. 병 634기가 전역을 3일 앞둔 오늘

- 그래, 나는 이제 안다. 634기가 전역 기수라는 것을-

갑작스레 술자리가 생긴다. 전역 회식. 그래, 나와는 무관한 걸 수도

있다. 앞으로 수도 없이 겪게 될테다. 그렇지만 내가 이 낯선 곳에

오고 나서 벌써 두 번째로 내 부하들이- 동생들이, 친구들이 -

자신의 삶을 다시 찾아 나간다. 자유를 찾아 돌아간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스쳐지나갈 300 여명 중 열 명이라도 나에게

술을 사달라며 연락 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 중 일부라도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상관이고, 그런 형이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의 3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녀석들이 634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얼굴도, 이름도 생소한 그들.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지 모르는,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들.

그 녀석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내 직책과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말을 걸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친근한 척 말을 걸었다.

그 녀석들이 나를 알고 있다는 건 그다지 신기하지 않다.

나라는 인간은 137명의 대대원 중 하나 늘어난 누군가,

몇 안 되는 초임 간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관심이 되는 건, 그들이 나를 기억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녀석들 중, 사실은 나와 동갑인,

한 녀석이 내게 말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챙겨다 줘 고맙다고,

지난 군생활 동안 그렇게 해 준 사람은 처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을 위한 진심이고, 사소하고, 습관적이고, 너무도 쉬운

그 매일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간 나는 기뻤고 행복했고 놀라웠고 울고 싶었다.

지난 두 달의 시간, 게으름을 잔뜩 부리며 그나마 다한

나의 진심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들인 사소한 나의 노력이

그들에게 기억됐고, 그들로 하여금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게 했다.

내가. 나를. 내게....

나는 기도했다 나를 위해서,

나의 끈기없는 진심이 최소한 앞으로의 3년 동안은 지속되기를.

그리고 한없이 감사했다, 나의 게으르고 사소한 진심마저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너희들에게 사랑받는 상관이 되고 싶다.

너희들이 언제나, 먼 훗날에도 기억하고 찾고 싶은 형이 되고 싶다.

아직은 지금의 내 직책이 버거운 내가,

전역 후의 내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단지 그것 뿐이다.

게으르고 부족한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의미가 될 때 세상은 살아갈 만 하다는 것,

너희가 소중한 누군가와 떨어져 지내는 그 시간에

나는 언제나 너희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내게 너무나도 어려울 것만 같던 3년이란 시간이

이제 내게 희망이고, 즐거움이고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 참 기쁘다. 참 고맙다.

놔랑	이 글을 읽으면 형이 몹시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형은 역시 글쓰기의 귀재야.		2008/03/23
다경	화랑아 제대할때까지 현우형한테 5번씩 술 사달라고 그러자		200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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