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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어둠의 속도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거의 절망적이다 싶을 정도로.

올해 읽은 책은 두 권이었나.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이게 지금의 나다.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내게 필요한 건 잠과 휴식.

힘겹게 힘겹게 읽어나가지만 속도는 더디다. 사고는 정지해 있다.

그래, 머리가 갑자기 너무나 나빠졌다.

자주 말을 더듬고 자주 잊는다.

그런데도 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억울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고 있는 책, 어둠의 속도.

자폐증에 대해 다룬 책(작가는 실제로 자폐증 아이를 두고 있다).

변화에 대해 다룬 책. 의지에 대해 다룬 책.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그 변화가 자신에 의지에 의한 것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의 논리는 세상의 것과 다르고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나름의 체계가 있고 그 안에는 그의 기호나 취향이 개입하지 않으며

작가는 그런 '루'의 논리를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렇다. 루 애런데일은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지만 어쨌거나 받아들인다.

그가 행하고 싶어하는 것, 행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명확히 구분되지만

그는 그 실행여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하는 대신

세상의 기준에 따른다.

그는 언제나 'xxx 하고 싶지만 ooo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그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대로 행하고 말한다.

물론 그에게는 통념상 옳고 그른 것, 누군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들을

구분할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타인이 (자폐증이 아닌 사람들...

혹은 달리 말해 소위 '정상'인 사람들) 그것을 원하는 지 원하지 않는 지

구분하고자 하고, 그 구분에 따라 행동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이 '정상'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명확히 확신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한다. '정상'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어둠은 빛보다 먼저 존재한다고.

그래서 어둠은 빛보다 빠르다고.

어둠은 '비정상'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작가는 '어둠이 빛보다 빠를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자폐증) 아이의

말을 모티브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읽는 내내 작가가 그 모티브에 너무

집착해서 '어둠'의 의미를 너무 불분명하게 만들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둠은 빛보다 빠를 지도 모른다.

정상이란 것은 정규분포로 존재하는 비정상들의 집합 속에서

각자의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 일정 범위의 (가상의) 환상인 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처럼 )주장한다.

'정상'이란 것이 환상일 지라도 그 환상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의 환상을 가급적이면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는 그 충족되지 못한 환상에 실망하거나

그 환상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애초부터 나는 가정을 잘못하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모두가 노력하는 동시에 모두가 이해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데도 이해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이해를 바라고

누군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해주지 못하곤 한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터무니 없이 자기중심적이고 미련한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내가 자기중심적이고 미련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무엇들을 잘못하고 있는 지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나의 잘못들을 덮으려 할 때

그것을 지적해 주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중요한 것은 어둠이 빠르냐 빛이 빠르냐가 아니다(혹은 어느 것이 먼저냐).

그저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논리로 말하는 것이 중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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