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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따위는 더이상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지만
오늘은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슬프고 아프고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부끄러워해야 할것만 같은데 끝까지 조금도 부끄럽지 않더라.
상황 1
오후에 후배 A가 과사에 무언가를 물으러 왔었는데
나는 우연찮게 과사 T.A.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질문이 막연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고
현석이 형과 나는 둘이서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사실 두 사람의 조언 방향이 너무 달라서 헷갈리기만 했다)
대충 상황이 끝나고 혜선누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A가 지나가며 꾸벅 인사를 했다.
나와 혜선 누나는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잠시 후 A는 다시 3층으로 올라왔다.
음료수를 한 아름 안고.
그리고 테라스로 들어오더니 내 것과 함께 혜선 누나 것까지
음료수를 놓고 갔다.
잠시 전에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을 보고 행한 배려.
상황 2
선배 B씨가 기분이 안 좋아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나도 요즘 내 정신이 아닌데다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몇 마디 걸고 서성이다가 하는 수 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를 나왔다.
사당 역을 지날 때쯤 B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걱정할 거 같아서 전화 했다며.
두 상황의 공통점은 내가 전에는 어떠한 인간이었고
지금은 어떠한 인간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 1에서 내가 처음에 놀랐던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해주고
보답을 받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 사이의 행위에 보답이 반드시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다.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
마음 따위가 통한다면 인류는 결코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도 이 모양 이 꼴로 매일 심장을 움켜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A가 내게 고마워하는 방식은 나를 너무나 즐겁게 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놀라게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기대감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었고,
예전에는 그런 방식으로 보답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으나
이제는 결코 그렇지 않는다.
나도 이제는 그냥 잠시 고마워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그리고 오늘 같은 경우 나는 별다른 기대감 따위를 갖고 행한
행위도 아니었고 내가 대단한 도움을 주었을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A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A에게 어떤 마음으로 해주었냐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A가 어떻게 받아들였냐다.
A는 내 마음을 진실보다 더욱 고맙고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나는 기쁜 마음, 놀라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게다가 같이 있는 사람까지 배려해준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A의 배려에 더 고마워하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다. 그만큼이나 세세히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본 건 태어나서 손꼽을 정도다.
상황 2에서는 세 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번째는 선배 B씨가 내가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B씨 자신의 우울한 기분에 마음을 계속
쓸 것이라고 '믿었거나' 적어도 내가 전에는 '걱정하는 인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나는 상당한 신뢰를 쌓고 있었나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예전에는 그런 인간이었다.
두번째는 내가 그때 그냥 멍하니 있었다는 것이다.
염치를 모르는 J양 때문에 사이가 소원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인 C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나는 C씨가 우울하다고 하면 다음 날
초코렛이나 케익을 안겨주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선배 B의 경우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더 소중하냐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단지 내가 변했을 뿐이다.
그리고 셋째는 B씨의 배려심. 그건 더 말할 필요 없을 것 같다.
매일 우울하다고 징징대는 나로서는 미안할 뿐이다.
내가 굳이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고는 너무도 놀랐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엔가 절대로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내가 그렇게 변해버려다고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A나 B가 착한 사람들이라고, 혹은 내가 예전에 착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비정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나의 모든 좋은 점들을 잃어버렸다.
누군가 예쁘다고 해주었던 나의 마음 따위는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 몇 조각 마음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가장 비열하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나였기에
그 작은 몇 조각마저 내버리고 잃어버린 지금의 나란 그 누구보다도 비루한
존재임도 알고 있다.
분명 여태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내게 믿을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순간이 존재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
설사 누군가 정말로 내 존재 전체를 안고 얼레고 세워준다고 하더라도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다.
마치 지금 입에 물고 있는 담배처럼,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고,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던 시간들은
모두 지나가 버렸고 이제는 그만두어야할 이유도 모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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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ag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