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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산타클로스를 위하여

아하스페르스는 예수를 부정한 까닭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세상을 방황하는 운명을 얻었다. 예수는 자신이 태어난
12월 25일마다 그에게 더욱 극적이고 저주받은 임무를 하나
얹어주었다. 그것은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사슴을 닮았으나
코가 미친듯이 반짝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상한 생물체가
이끄는 위험천만하기 이를데 없는 썰매를 타고
(썰매가 날다니 대체 애초에 썰매를 탈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지저분한 굴뚝(그것도 수천만 개!) 속으로 들어가
짜증나게 칭얼대는 어린 아이들이 걸어놓은 더러운 양말에
선물을 넣어야하는 가혹한 운명이었다.

그는 예수에 반항하고자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어기고 일년 내내 질질 짜는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발목을 잡는 짓이라는 사실은 이내 밝혀졌다.
사실 예수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아하스페르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하여
그런 원칙을 내세웠던 것이었으나 아하스페르스는 같잖은
반항심에 그 날을 가장 바쁜 날로 만들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중세 이후로 이탈리아에서는 카사노바란 이름으로 여자들을
유혹했고, 세빌리아에서는 이발사 노릇을 했으며 스페인 쪽에서는
돈 쥬앙이란 이름으로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영원히
방황할 것을 명 받았기에 결코 한 여자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불행히도 뒈질 수도 없었기에 생 제르맹 백작이란 이름을
얻었고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는(그래, 당시에는 프랑스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칼리오스트로 백작이란 이름을 얻었다.

끊임없이 방황하던 그는 20세기 초 코라콜라라는 거대 다국적기업의
농간으로(미필적 고의) 졸지에 빨간 옷을 입고 돌아댕기는
배가 나온 배불뚝이 노친네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여자들을 꼬실 수도 없게 되자 그는 평안한
휴식을 취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산타클로스는 사실 부모님이다'라는
괴소문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마침 배불뚝이 변태 노인네가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한 부모들은
산타클로스를 바로 부정해버렸지만 자신들이 어렸을 적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바람에 얻었던 극심하고 격렬한 트라우마를
혼자 감내하는 것이 억울했던 부모들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끝까지 믿도록 노력했다. 그런 부모들은 지옥에 갈지어다!

얼마 전 루돌프의 뒷발에 채여 부상을 입은 (역시 미필적 고의)
아하스페르스는 지금도방황의 운명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방황하고 있다.
더군다나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 새벽에는 완전히 절망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런 아하스페르스(산타클로스)가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담배가 다 떨어진데다 내일 역시 나가기 싫으므로
오늘은 머리 맡에 양말을 걸어두고 그가 담배 한 갑을 넣어놓고
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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