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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white out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것보다
애초에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시고, 글을 끄적이며 감정의 찌꺼기를 묻혀내는 대신
감정들을 걸러내고, 모든 것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실상 내가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 자체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20대 중반에 가서야 깨달았다는 점에서 나는 그 모든 점에서
그렇듯 남보다 늦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하는 무엇이 있을 때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할 때 그것은 또 다시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줄 수 있는 것은 끝이 있다는 확신 뿐이다.

갑작스럽게 부관이 됐을 때는 연말에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갈 것이며
끝나면 긴 휴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시 갑작스럽게 행정계장이 됐을 때는 검열만 끝나면 예전처럼
편해질 것이라고.
그렇게 끝나는 시점의 명확함과 그 보상만이 단 하나의 위안이었다.

끝나는 시점의 불명확함과 보상의 부재보다도 더욱 잔혹한 것은
'왜?'라는 질문의 존재다.
우리 머리 속에 '왜'라는 의문사가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왜'라는 의문사는 논리적 답안을 요구하고
우리의 이성은 그 답안의 제시를 위해 분주히 노력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답은 침묵 속에 있다.
세상은 부조리하며, 논리 그 자체보다는 논리와 논리 사이의 모순 속에
더 많은 진실이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쉽게 이를 수 있는 답은 '체념'이다.
체념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소극적 침묵의 선언이고
논리적 과정을 모두 건너뛰는 손쉬운 방법이며
끝나는 시점과 보상에 대한 완벽한 망각이다.

머리 속이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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