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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 문제 답이 없는 것 같아요."
"뭐라고??
"이 문제 답이 없는 것 같다고요."
"설마."
"정말 없어요. 한 번 풀어보세요."
쓱삭쓱삭-
"어라? 정말 없네."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다니?"
"답이 없으니까 답을 쓸 수가 없잖아요."
"그냥 아무 거라도 적어 넣으렴."
"네? 아무 거나 넣으면 틀리잖아요."
"그렇겠지..."
"저 이거 푸는 법도 알고 답도 아는데 보기에 답이 없어서
틀리는 건 억울하잖아요. 그런 게 어딨어요."
"세상에 답이 존재해도 보기 중엔 답이 없는 경우가 많아. 원래 그런 거야."
"그럼 답을 알면서도 그냥 틀려야 되는 거예요?"
"그야 채점하는 사람 처분에 맡겨야지.난 말이지, 4번이 좋아.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개인적 취향이야. 아니면 이렇게 고르는 수도 있어. 네가 찾은 정답과 가장 비슷하게 보이는 걸 택하는 거지. 물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답일 때도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모르는 건
마찬가지니까 비슷한 걸 고르는 것이 낫겠지."
"그래서 그렇게 하면 맞게 해주는 거예요?"
"맞든 틀리든 그게 뭐 중요하다는 거니? 네가 답을 알고 있으면
상관없잖아. 만약 네가 4번을 고른다면 그 답에 2를 곱하고 3을 더하면
되잖아. 그냥 그런 걸로 해둬. 그 편이 훨씬 더 편리해.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아."
오랫동안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답 그대로 모든 것이
척척 풀려나가는 순간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믿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이며 그 속에서 나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세상은 결코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어쩌면 답이 아니면 답안지에 적어넣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가끔(내 삶의 대부분의 기간을 '가끔'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버겁고 외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아무 답이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모든 것에 쉬워지고자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결코 나를 그렇게 키우시지 않았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연한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나는 지금도
그런 고집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믿는다.
그리고 실은 그런 나라서 나를 아직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친구로, 남자친구로,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내가 그들에게 정답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도
언제나 내게 정답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답이 반드시 갖춰야 할 부분들을 갖고 있고 가끔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그런 부분들도 갖고 있다. 진정한 관계란 서로에게
정답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관계는 그런 것을 서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식으로 흘러간다. 그런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친구 하나하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분리된 수십 개의 자아를 가져야 할테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여전히 그런 관계를 원한다면, 그런 관계가 둘 이상일
수 없다면 우리는 보통 연인이나 배우자에게서 그런 것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그 누구도 내게 어떤 사람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픈지 물은 사람도 없었다. 물론 정작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내가 항상 마음에 품었던 생각들이 말로 표현하기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에 난감해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면 가장 일반적인 답에
근접해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일반적인 답에 수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일반적인 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에 근접한다면 우리가 서로의 답을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비교적 덜 곤혹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다르다.
문제는 얼마나 다르냐가 아니라 수렴에의 의지다.
그런데 사랑은 또 다른 문제다.
13. 237과 337이 숫자가 세 개나 겹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리 수가 다르고 하나는 소수점 이하가 없으니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6과 9는 3의 배수니 비슷하다고 믿을 수도 있고
짝수와 홀수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니까 사랑은 믿고자 하는 의지다.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존재다.
언제나 누군가를 보며 나와 다른 점만을 찾아내던 존재가
다름을 인지하고도 같은 점을 찾아내고픈 마음을 갖는 것이,
그 차이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머는 것이,
다른 것을 같다고 우기고 싶어하는 그 막무가내의 마음이
사랑이다.
내가 오래도록 답이라 믿고 있던 것은 선택지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답이라 믿기로 했다.
채점일랑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고 나는 내가 옳다고 믿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다행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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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전망 좋은 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