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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선택

언젠가부터 사유하고 있지 않다.
나의 의식은 지극히 현실적인 영역에만 대처한다.
그래서 나의 언어 또한 현실의 조각들을 이어맞추는데 급급하고
내가 하려던 말들은 조금도 내뱉지 못하며, 이제는 하고자 하는 말조차 드물다.

말들이 현실의 것만을 다루면서 글을 쓰는 일도 어려워진다.
지금 이 글처럼 사실을 서술하는 글들이 있을 뿐,
감정의 알레고리들은 더이상 새로운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이 모든 것들이 망가졌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며칠 전 2010년에 아무 것도 적지 못했음을 깨닫고 적잖이 당황했다.
감정의 파편들마저 증발해버리고 더이상 그 어떠한 감정의 결정도 품을 수 없을 때,
익숙하지 않은 소소한 즐거움들로 내 삶을 채워나가며
두려움과 불안감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 내게 남은 것이 없음을 깨달아버렸다.

오직 불안만이,
끝없는 동요와 허덕임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적을 수 있는 것일까.
즐거운 순간이 겹겹이 쌓일수록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고
이런 감정의 부재가 또 다시 오래도록 지속될 것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공허함과 싸우기 위해서 계속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쪽을 택할테지.
누군가한테 손 내밀 용기도 확신도 없는 채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두려워하며 끝없이 불안해하고 또 잊어버리려 노력하겠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픈 것도, 불길한 꿈을 반복해 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용기가 없는 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고, 확신이 없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내가 가진 것들이 커질 수록 같이 커져 갈 것이다.
하나 더 갖게 되는 순간 변명거리가 하나 더 줄어드는 까닭이다.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쉬운 길로 갈지, 누가 손내밀 때까지 마냥 기다릴지.
아마 여태까지처럼 모든 것이 계속 그대로 반복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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