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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punch drunk

거의 매일 한 번씩은 하게 되는 상상이 있다.

나는 그 의식을 죄의식과 두려움을 가진 채 펼쳐나가는데
그 때문에 그 상상이 구체적으로 이뤄진 적은 없다.
그런 상상을 처음하기 전에 이미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뻔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였고 다행히 결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정 없이 오직 모든 일이 끝나는 그 순간만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는 그 마지막 순간에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아낸다.
아니, 그 순간을 상상할 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된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상상하는 것은 마지막 순간
내가 느끼게 되는 감정 뿐이다.
그 감정은 극도로 허무하고 끔찍한 것이어서, 그 일은 한 번 일어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서-아니면 무한히 반복될 일이라서
다행히도 현실의 나는 그 감정을 상상하는 것에 그친다.
그리고 불행히도 현실의 나는 그러고픈 욕망과 계속 싸워나가야만 한다.

원한다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사실은 그것을 간절히 원함에도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 내가 나 자신일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치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지만 다운은 당하지 않는 복서처럼
나는 일상 속의 무수한 잽을 견뎌내야만 한다.
그렇지만 언젠가 또 다른 충격에 결국은 무너진 적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무너져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무너지기 전의 나와 무너진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무너지기 전의 나 뿐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오늘도 비틀거리지만 쓰러지진 않는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이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되어도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란 말로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내 마음 속에서 끝없이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나는 삶을 이런 식으로 보내도 좋은 걸까?

그냥 쓰러지면 편하게 쉴 수 있는데 난 왜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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