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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여전히 떨림

술을 마시면 잠이 깰 줄 알았는데 여전히 피곤하다.
나는 여전히 엄숙한 도덕주의자에 원칙주의자이고
갖고 있는 것도, 앞으로 얻을 것도 하나도 없는 채이지만
주제에 사해동포주의자인지라 동기에게 소개시켜줄 만한
괜찮은 아가씨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모두들 내게 소개팅이 너무 잦다고 하지만
실상 나는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두세번 만나며 잰 적은 없다.
나는 쉽게 반하지도 않고, 사랑은 더더욱 하지 않으며
까탈스럽고, 예민하며 바라는 것이 많은 이상주의자다.
한 번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평균 13개월이 걸리고
13개월이나 걸린다는 사실보다는 내가 누군가를 또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그런 인간이다.

그러니까 도대체 좋아할 만한 구석이라곤 스스로 생각해도 딱히 모르겠는데,
약하고 섬세하고 제멋대로이기까지 한데
언젠가는 누군가 나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이토록 순식간에 죽음만치 깊은 외로움에 수시로 빠져
누구든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서 오늘은 조금 비난을 받았다.
그렇지만 난 정말 누군가한테 비난 받을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걸,
소개팅 말곤 누구랑 단둘이 만난 적도 없고
좋아하지 않는 여자랑은 손끝도 닿는 게 싫고
사귀지 않는 여자랑 영화 보느니 남자랑 보는 걸.
그러니까 살짝 억울하다.
엄숙한 도덕주의자인 내게 그런 비난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혼자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토록 미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했던 잘못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고
여자친구가 없는 나의 감정이란(그러니까 마음 쏟을 곳 없는 나란 사람이란)
어찌나 불안정한지 새삼 느끼고
최근에 내가 얼마나 쉽게 도망쳤는지 또 새삼 느낀다.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다.
떨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어김없이 두렵다.
물론 술을 마신 날도 대부분은 두렵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류의 떨림 속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은 그저 장미빛이고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 육체적 욕망의 해소 끝에 허무로 결론 지어지는 -
그런 인간적 공허는 말 그대로 공허함일 뿐이다.

오늘밤 나는 <여름으로 가는 문>의 귀여운 사랑을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73년 간의 키스를
캔지와 제나로의 끝없이 엇갈리지만 나는 진심을 알고 있는 그 사랑을
<영원한 전쟁>의 수백 년 간의 기다림을
꿈꾸며 잠들 것이다.
누군가 이 떨림을 멈춰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시간은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이 섬세함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같이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같이 나쓰메 소세키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떨림 따위 잊을 수 있잖아 그 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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