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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의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를 읽던 중
범인이 밝혀지고 결말만 남은 부분에서 책을 놓고
블랙 스완을 보러 갔다.
왼쪽에는 태곤이, 오른쪽에는 미쉘.
목도리를 두른 채라 뒤로 기대니 자세가 편했던 데다가
미쉘이 맥주를 사줘서 몽롱한 상태로 영화를 감상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진지한 영화를 보며 태곤이한테
계속 농담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누군가한테 야한 농담을
내가 먼저 꺼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 모두들 정말 좋았다고 했는데
확실히 정말 좋긴 했다. 근데 나는 내가 몽롱한 상태였던 것이
좋았던 것인지 영화가 좋았던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영화를 보며 별다른 해석들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몽롱했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 아무 생각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 난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도 난해했다는 느낌보다는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던
것을 보면 역시 난해한 영화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머니에 의해 억압 받으며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 채 살아온 발레리나,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수 없고, 하얀 백조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발레리나.
그러니까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해석의 여지가 넘쳐나는 설정.
내 나름의 성의없는 해석에 따르자면 니나의 욕망은 억압된 채 있기에
니나는 하얀 백조 역밖에 해낼 수가 없고, 단장은 니나가 검은 백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녀의 욕망을 떠트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강렬한 초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욕망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될 수 없고, 초반에 니나는 그것을 자기애적 방법으로 찾으려 한다.
니나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은 같은 발레단의 릴리.
니나는 자기애적 방법으로 자신의 강박관념을 이겨내고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기에 릴리와 동침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발레리나로서 완벽을 추구하고자 하는 니나의 강박관념과
릴리를 통해 자기애적 욕망 분출을 이루려는 시도는 상충된다.
릴리가 자신의 지위를 빼앗을 수 있다는 위협 때문이다.
이는 백조의 호수의 본래 스토리와도 상통하는데
결국 검은 백조가 하얀 백조의 자리를 대신하고 하얀 백조가 목숨을
잃는 것이 발레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검은 백조란 결국 하얀 백조의 다른 이면이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상충되는 세계, 대극에 있는 욕망이다. 그렇기에 검은 백조가 되고자
하는 니나의 욕망은, 하얀백조인 동시에 검은백조가 되어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망이지만 실상 그것은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애적 시도'라는 정상적 방법으론 구현이 불가능한 것이다.
반면 니나의 강박관념은 니나가 검은백조가 되도록 강요하는데
현실의 니나가 하얀백조로 남고자 하는데 반해, 니나의 강박관념이
니나에게 강요하는 검은백조의 모습은 끝없는 환상을 니나에게 부여한다.
결국 니나는 릴리를 찌름으로써 자신의 욕망, 자신의 강박관념을
정복하는 대신 그것에 완전히 정복당하기에 이른다.
정복된 니나는 이제 하얀백조인 동시에 검은백조가 아니라 완전한 검은백조다.
니나의 강박관념은 니나가 자신의 욕망, 자신이 그토록 거부하던 세계에
살도록 니나를 완전히 굴복시킨 것이다.
작품이 끝날 때쯤 니나는 자신이 찌른 것이 릴리가 아니라 자기자신임을 깨닫는다.
니나는 라이벌과 싸워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워온 것이 아니고
니나가 얻은 것은 라이벌이나 자신의 욕망과 싸워 승리한 끝에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 패배는, 그리고 그 승리는 자기파괴적 성격을 띤다.
결코 동시에 얻을 수 없는 선과 악, 초자아와 욕망의 제어,
완벽이라는 속성은 자기파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영원함이 죽음을 통해서만 연결되는 것처럼
모든 사랑과 진리가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과 같다.
결국 완벽함은 니나가 자신을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러나 완벽함이란 일회적 속성을 띠는 것이다.
완벽한 순간 그것은 세상에 더는 존재할 수 없다.
가장 큰 것은 가장 큰 것을 그 대가로 요구한다.
그렇기에 죽음은 필연이다.
물론 영화에서 니나가 죽음을 맞이했는지 아닌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니나는 완벽의 순간을 경험했다.
완전한 자기파괴의 순간 - 죽음은 찾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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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여행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