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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아마도 아무도 아무것도

점차 정리되어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으로.

처음에는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그 다음에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원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것과
원하지 않지만 일어나는 일들 사이의 간극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마침내 이 지점에 놓이게 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무런 고민 없이 행하게 되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미련 없이 안녕을 고하며
우리는 어른이 됐다고 말한다.
요컨대 모든 고민과 간극이 사라지고
지극히 현실적인, 즉각적 대답만이 놓여 있는
그 곳에 다다른 사람만이 어른이라 불린다.

어른이 되면 글을 쓸 수 없다.
어른에게는 고민 대신 명쾌한 해답만이 있고
진심 대신 욕망만이 있다.
신경증 대신 말초적 현실이 머리 속을 채운다.

몇 주간 머리를 굴리고 굴려 내가 쓸 수 있게 된 말은
아무 것도 쓸 수 없다는 이 말 뿐이다.
그리움 대신 욕망한다.
꿈꾸는 대신 움직인다.
기억하는 대신 그저 머리 속에 넣는다.
내가 쓸 글의 주인공 이름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더이상은 그리워하지도 꿈꾸지도 기억하지도 않으니까.
내 신경증은 사라졌고, 나는 무난한 사람이고,
현실적인 사람이고,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사람이다.
매번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워할 순간 하나 정도는 남겼어야 했다고.
하지 못해 몇 번이나 후회해야 할 말 하나는 남겼어야 했다고.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삶의 의미라고 믿는 지금보다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던 그때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진심이라고 스스로 속일 수 있었던 그때가
자신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지금보다 더 나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차갑게 식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팠지만 지금은 어떤 감정이라도
살아나 아무 말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여태까지 잘 해왔다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이 살아숨쉬는 것을 느낄 수 있을만큼
설레고 또 진심일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아마도 아직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언제나 내가 아직 만나지 못했던 누군가였던 것 같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아직 너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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