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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더라면...하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처음 떠올린 생각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전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정말 그것을 원하긴 했던 것인지,
그것을 원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인지,
내가 포기한 것들에 대한 변명으로서 그것을들 원한다고 말했던 것인지.
나는 내가 그것을 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실로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위해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물론 그 조건은 단 한 번도 충족되지 않았지만
그 조건이 금세 이뤄질 거라고 바보처럼 매번 진심으로
믿어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것, 그러니까 내가 바란다고 말해왔던 그것,
내가 타인을 위해 나의 삶을 향유하는 것,
진리를 추구하고 사유하고 진실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 어쩌면 나를 위한 변명에 불과했음을 이제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포기와 변명 사이에서 결국 나는 옳은 인간도 되지 못했으며
실상은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가 비난하는 모든 삶의 형태를 완전히 답습하지도
못하여 결국 내 삶과 모든 생명에 대해 방관자로 남아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고백하건데 나는 내 행복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내가 타인의 마음에 다가섰다면, 타인을 위해 무언가 했다면
그건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내 내밀한 행복의 마지막 선을 넘어서며 무언가 했던 기억이
내게는 없다.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것도 내 자신에 대한 변명이었으며
내가 책을 읽는 것 역시 내가 똑똑하다고 타인과 나 자신을
속이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진심이지 못했다.
내가 이성을 볼 때 까다로운 건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진실하지 못함을, 내 애정은 쉽게 변질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대를 믿지 못했던 것도 나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고
수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도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변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이 변하기도 훨씬 전에 내 불안이 모든 것을
잠식하여 관계를 끝내곤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현재의 나에게, 상대에게 충실하지 못했고
지금보다는 존재하지 않을 미래에 내 진심을 맡겼다.
그리하여 나는 단 한 번도 진실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이 되어야 할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에 진심이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 한 번이라도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싶다.
누군가 내 옆에 있어 주었을 때, 내게 더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어 주었을 때 어째서 상대에게, 나에게 더 솔직하지 못했던 것일까.
내 불안정함과 게으름, 숱한 잔소리와 짜증이 내 깊은 곳에 있는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노라고, 실로 욕망하는 것이 없는 나는
그런 내가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노라고, 그것이 나의 비겁함이며
어째서 나는 단 한 번도 진심일 수 없는 것인지 몰라 나는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웠노라고 솔직히 고백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떻게 해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친구들 속에서나 직장에서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록, 내 안에 자신감이 충만하고
내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서 그것이 나타날수록
내 안 가장 깊은 곳에서 조금도 자라지 못하는 진짜 나는
더욱 초라해진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진심으로 -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때
손에 묵직히 무언가 잡히면 좋겠다. 너무도 꽉 찬 느낌이라 그것
말고는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기서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이곳을 과잉된 감정의 잔재와 애증에서 빚어진 비난으로 가득 채우기
훨씬 전에 나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스스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두려워 미루고 미룬 나의 고백은
결국 시작점을 이토록 먼 곳으로 밀어놓았을 뿐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모든 사람을 증오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썼던 글이 있고,
단 한 사람이 미워 썼던 글들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공군 중위로 군 복무중이고,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설렌 적이 없는 스물여덟의 내가 있다.
그리고 사랑과 증오를 모두 걷어내면, 모든 감정과 글의 파편을
솎아내고 나면 또 다른 스물여덟의 내가 있다.
평생 단 한번도 진심으로 살아가지 못한 내가 있다.
아니, 정말 있다고 말해도 좋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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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