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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fictionary

기억 속에서는 아주 평온한 날들이다.
그 언젠가보다도 사랑받고 있었고
그 언젠가보다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같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그의 생에서 가장 무책임했던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는 아주 작은 죄책감조차 갖지 않았다.

거기에 간절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의 대가로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그건 자신이 사랑받은 것을
돌려줄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기억 속에서는 눈부신 날이다.
그 아이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그 모두가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숨이 막히는 여름의 공기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뭔가 일어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기억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겨울 초입, 그는 술을 조금 마신 채였다.
그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었다.
그가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순간 그녀가 그를 원한다는
터무니 없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니까 그 안에 마땅히 있어야 할 죄책감, 신념, 초심 따위와는
무관하게 통화가 끝났을 무렵에는 시작과는 무관한 끝만이 있었다.
그 끝은 미로의 시작이었고, 긴 시간이 지나 그 미로의 벽이
무너진 그때가 바로 겨울 초입, 그가 술을 조금 마신 채였던 그때였다.

그가 그녀를 안았고, 그녀가 그를 밀어냈다.
재차 반복된 그 동작들.
진심은 없었다.
미로의 벽이 녹아내린 그 자리에 자란 불안감 혹은 거기에 덧붙여
처음의 순수함과는 무관한 어떤 욕망...만이 있었다.

어째서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을까.
그들은 서로를 원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원했다.
그들 사이에는 결국 그 무엇도 없었다.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터무니 없이 순수했지만 진실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 전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 안에는 마땅히 존재했어야 할 감정들이 부재했다.
그렇다면 진작 잊혀져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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