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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빙빙빙

고심 끝에 한걸음 내딛다가 그 한 걸음이 예전의 한 걸음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 둘이 완전히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그 어떠한 둘도 같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지금 막 공장에서 찍어져 나온 같은 모델의 TV 두 대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구분 짓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오래 전 어떤 순간과 같은 걸음을 내딛는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같은 몸짓을 하고 같은 표정을 짓는다.
물론 그걸 깨닫는 순간 나의 표정은 일그러지겠지만.
그러나 어쩌면 그 일그러짐마저도 같을지 모른다.

달라진 것은 없다. 매순간 매순간이 같다.
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다.
때로 뭔가 다르다고 느껴질 때는 그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을 뿐 여전히 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다.

답이 없으면 몸을 틀어 한 발자국 크게 내딛어.
어차피 지금 그 자리에 무엇도 없다면 부디 부디.
그러나 한껏 몸을 틀었다고 생각했을 때 딛는 걸음이
바로 조금 전 딛었던 바로 그 자리에 놓인다.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이 반복된다.
궤적의 원주가 조금 더 커지거나 작아질 뿐.
그래서는 똑바로 걷는 사람보다 결코 더 나아갈 수 없다.
거기에는 '혹시'라는 사소한 우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적은 이 글조차 오래되고 익숙한 그 궤적의 일부.

Luis

The honesty of your ptosing is there for all to see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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