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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길

길을 잘못든 마음은 다시금 기억 속에서 제멋대로 수정된
찬란한 - 실제로는 군색한 - 과거를 향해 더듬더듬 길을 나아간다.
이미 오래 전에 무너지고 스러졌던 도시의 건물들은 그 언제보다도
높게 서 있고 거리마다 가득한 사람들은 내게 웃으며 말을 걸 것만 같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로 인사하고 즐겁게 걷는다.
차도에는 수많은 차들이 행복한 경적을 울리며 지나치고
가로수의 잎은 푸르고 또 푸르다.
익숙한 길을 지나고 또 지나 활기찬 시장으로 들어선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과일과 생선은 모두 싱싱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런 그 장소에서 가장 빨갛고 먹음직스런
사과로 손을 옮긴다. 설레는 마음으로 절정의 행복을 기대하며
조용히 손을 뻗어 사과를 집으려는 순간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외침이 간절한 기도로 바뀌고 슬픈 노래는 신음으로 잦아든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거기에 놓고 지나쳐 온 것이며
원래 그러했음이 아니라 기억이 세월과 함께 변해온 것이다.
드높이 솟은 건물들과 쉼없이 지나치는 차들의 행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시장의 사과 한 알은 지금도 어딘가에 있으며
내가 잡지 못할 뿐, 내 기억 속 어느 곳이 아니라 여전히 내게
열려있지 않은 머나먼 어느 길 끝에 놓인 도시 한가운데에 지금도
아스란히 놓여 있다.

내 앞에 그 어느 길도 열려있지 않을 때,
상큼한 사과 한 입이 고팠던 나의 기억은
이미 오래 전 지나왔던 길이 마치 새로운 길인양 나를 인도한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나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결코 그 무엇도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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