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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지 않은가.
누군가 휴전선 너머 땅에 혼자 억류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순간에
모두가 그의 안부를 걱정하기는 커녕 그의 존재 자체를 잊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쉼없이 떠들어댈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나라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기본적으로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기보다는 이념에 휩쓸려 있다는 데에 있다.
일반 시민층은 제하더라도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북한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범민련 같은 단체를 진보단체의 테두리 안에 그대로 두는 것 자체에서
그들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자유'나 '평등' 같은 하나의 가치의 실현을 지향하고 그것을 위해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자유이다.
그러나 일관되게 '친북'이 주요 논조요, 모든 것이 '북한'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지향점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보 세력의
일부로 받아들임은 문제가 있다.
영국의 보수당 당수였던 하워드는 '우리는 누군가 부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가난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로 시작하여
자신들의 가치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한 바는 우리는 이러한 가치관을 갖고 있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정치의 요점은 다수결에 의한 선택이나 모든 의견의 존중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 방향에 있어 다양한 가치관 사이의 충돌이 있을 때
이를 조정하고 선택하는 데 있어 효율성을 기하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는(그리고 모든 정치 제도는) 태생적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항상 옳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없다.
다만 절차의 합리성을 통하여 모두를 납득시키고 그 책임을
고루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일방성일 것이다.
'2009 대한 늬우스'라는 예전 군사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정부광고는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 의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의 정서를 조금도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버린 사건이라 생각된다.
마치 장난감 로봇을 원하는 손자에게 엿가락을 하나 사주고
혼자 만족스러워하는 나이든 할아버지를 보는 심정이다.
또한 의회의 마비 역시 절망적이다.
정권이 교체되자 자신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상대에게 돌려주고 있는
여당과 야당의 모습은 추악하기 짝이 없다.
'당신들은 그렇게 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지 않으니까'라는 사고방식은 그들에게는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민주당의 국회 등원 거부는 여론을 이용하여 의회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비겁함을 감추고 있다. 더욱 우스운 것은 한나라당 역시 같은 행태를
반복해왔음에도 민주당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체계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목적은 수단을 합리화시키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는 미국의 핵개발을 이야기 하며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하고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말하고 있다.
절차의 테두리 안에서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 한쪽이 먼저 그 책임을 안고 나아가지 않으면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현재 반 한나라당 정서는 민주당의 등원 거부를 합리화시켜주고 있지만
민주당의 등원 거부는 결코 옳지 못하다.
비록 암울한 결과가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절차를 끝까지
지키며 그 결과까지 안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의 장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한계 또한 인지하고
끌어안아야만 한다. 절차를 모두 지키며 투쟁하고, 설사 불행한
선택이라 생각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올지라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나는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결코 합리적인
결과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보다 더 나은 제도를 발명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후안무치함을
지니게 된 것은 이념적 선택을 위해 그들에게 목적을 위한 수단의
합리성을 안겨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던가.
그렇다. 나는 결국 일반 국민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미국이 부시라는 대통령을 선택하고도 굴러갈 수 있고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역시 부침을 겪었고 최근에는 결정적 위기를
맞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기본 체계가 갖춰져 있다면
그 사회는 본궤도로 다시 진입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체계가 없는 사회보다는 그럴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 시스템의 구성의 책임은 국민에 있다.
우리 사회의 쏠림성, 이념성,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도 않는 맹목적 자기확신이
시스템의 구축을 막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정보와 소수 지식인의 의견을 받아들여 종합한 후 자신의
의견인 양 행세한다. 문제는 그것이 전국민적인 현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견이 없는 것을 두려워할 지는 몰라도
자신의 의견에 잘못된 점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문제가 제기 되면 스스로에 대한 작은 의심마저
없이 곧장 자기합리화로 향한다는 데에 있다.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와 북한에 홀로 억류된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그를 잊고 있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 사회가 얼마나 이상해져 버렸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 그리고 특히 작년 이후부터 사회의 큰 이슈들을
통해 드러나는 국민 정서가 반복해서 분노를 표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그 감정과 주장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자신의
끼워넣는 이상한 세력들이다. 그들의 그런 공작은 한두 해 동안
일어난 것이 아니다.
6.25(한국전쟁)는 북침이었다는 수정주의 학설이 폐기되었음에도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젊은 층 다수가
주적을 미국이라 말하는 현실에서, 정부에 대한 분노 표출의
목소리 속에 매번 정체가 의심스런 단체들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끼어드는 현실에서 북한에 억류된 한 국민이 잊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반성과 균형이다.
그토록 진보와 자유 그리고 평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북한 국민의 인권이나 핵개발, 우리 국민의 억류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침묵하고 있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진보세력의 주장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보가 진정한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치부를 정리해야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
체계 자체를 무시하고 자신들 내부의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며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임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나는 보수세력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더 진실하고 더 성실한 것은 진보세력일 수밖에 없다.
진정 어떤 소중한 가치들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그것을 요구한다면, 기득권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요하는 것이라
나는 주장한다.
우리는 각자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 독재' 혹은 '반공' 심지어는 '반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어떤 '반대'가 아니라 자신이 정녕 지향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 편'을 늘리는 대신 '자기 목소리'를 키우는 대신
자신이 지향하는 지점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행동하고 있는지, 그 행동에
문제점은 없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보수적인 사람이 마르크스를 읽을 때나
진보적인 사람이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서적을 읽을 때나
모두 상대의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서만 읽는다.
상대의 의견에서 경청할 점은 없는지, 자신의 신념에서
수정하고 의심할 부분은 없는지 알기 위해 읽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나의 정치적 위치는 어디까지나 중도보다는 보수에 치우쳐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변화의 시작은 진보세력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이제는 피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목소리만 키우려는 무의미한 논쟁 속에서
한 사람이 미아가 되어 북한 땅에 홀로 놓여 있는 이 시점에서
지향하는 바 없이 믿고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부재하며
오직 자기주장과 반대와 편가르기만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가 미쳤다고 단언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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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