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오후 어머니와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자마자 동생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때 참으로 놀랍게도 내 입에서는 즉각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내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오늘 이성학은 내가 노무현 지지자일 거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 즉각적인 반응은 대부분 놀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인을 싫어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싫어했다.
혹자는 그의 거침없는 언행이 소박하고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나에게는 한 나라의 실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위엄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훈련단에 있을 때 훈련단장님(준장)이
우리 앞에서 원더걸스의 텔미 춤을 추셨을 때도 조금도 경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나는 고인의 언행을 들을 때마다 경박하다는
느낌을 가지곤 했다.
그의 정책을 언제나 포퓰리즘에 입각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정책 자체의 포퓰리즘적 성격보다도
그가 그 정책에 필요한 국민적 공감대를 포퓰리즘을
이용해 얻어내는 과정이 참기 힘들었다. 내가 그를 싫어하기 보다는
미워했던 건 바로 그런 까닭이다.
몇 번인가 고인이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기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자신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틀 밖에 벗어난 세상을 틀리다고 규정짓는 일종의 독선.
내 가장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그는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작은 애정조차 버리고팠던 것은
내가 그것과 싸워나가고자 했던데 반해 그는 그것을 밀어붙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이란 말을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 째는 이 사람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자각을 갖지 않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였던 언행이
너무나 듣기 싫었던 것도 그 까닭이었는데 마지막까지 꼭 그래야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평검사와의 대화를 자처하고서는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할 때 나는 정말이지 일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소박함, 인간적인 면모는 정말 사랑스런 것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건 대통령이 가져야 할 미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인간적 매력과 세상에 대한 소신은 한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지만 결코 자신이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각은
없었던 듯 싶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책임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고인이 정말 자기 세계에 갇혀있었다는 것이었다.
소위 기득권이라 불리는 사람의 비리는 청산해야 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자신의 주변의 비리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눈감았다.
내 생각에 그는 자신 주변의 비리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검찰의 강압적 수사 때문에 삶을 끝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굳게 구축해 온 청렴과 진실에 대한 신념에
금이 갔기 때문에 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괴로움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난만 늘어놓은 것 같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나는 아무런
미움도 없이 담담하게 이 글을 적고 있다.
솔직히 나는 조금도 슬프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인간 노무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심각해져 본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그의 말과 행동에서 인간 노무현을 보고 인간 노무현을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자살'을 알고 머리 속에 떠올린 두 가지 생각 중
첫 번째는 분명 고인에 대한 비난이 맞을지 몰라도 두 번째 생각은
결코 비난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의 광신적 지지자들보다 그의 인간성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하고 훨씬 더 공감하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를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미 말했듯이 내 가장 안 좋은 점을 그가 고스란히 갖고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가볍게 말로만이 아니라 그가 온 삶을 다 바쳐서 만들어 온
선하고 숭고한 의지가 자신의 작은 과오들을 덮는 자기변명이
되는 순간들을 목도할 때 마치 내가 그래왔던 것을 확인하는 마냥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고인의 대통령 취임식 때 불참한 이회창 씨를 비난했었다.
그리고 취임식 이후 한동안은 그를 지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알고 있다. 고인이 지나치게 진실했기에 내가 그가 보인
작은 가식과 자기합리화를 용인할 수 없었음을.
그가 언제나 진심이었고 열린 마음을 가졌기에
역설적으로 그가 그의 적으로 규정한 자들에 갖는 배타성이 강했음을.
그가 아름다운 이상주의자였기에 나는 그가 자신의 이상에
충실할 때마다 의심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는 자신을 광신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과 좀 더 일찍 거리를
뒀어야 했고, 자신이 항상 옳지 않음을 그리고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은 그 자신이 깨끗한 만큼 더 크다는 것을 더 빨리
인정해야만 했다.
그랬더라면 나는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도 됐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을 추억한다.
정치인 노무현 대신 인간 노무현을 추억한다.
그가 싫었음에도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던 나는 고인을 생각한다.
애증 가득한 마음으로 옛 애인을 생각하는 그런 기분이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첨언//
덕수궁 분향소에 경찰 병력을 배치한 것에 말이 많다.
몇몇 소위 진보 쪽 신문들은 그것을 만평으로 실었다.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초한 사태다.
불행하게도 고인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대통령이 보낸 헌화를 파괴하고, 온갖 합리화로 폭력시위를
이미 수차례 행한 사람들이다.
고인에게 분향하러 가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가게 되더라도
나는 소위 닭장차를 보더라도 아무런 억압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의심을 받으면 화를 내기보다는 내가 왜 의심받을까
내가 뭘 실수해서 오해를 산 걸까 걱정부터 하는 사람인 까닭이겠지만
그네들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왜 나에게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고 그들에게는 꺼려지는지 말이다. |
|
1
278 
8/20 
간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