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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가끔은 질문을 던진다.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답이 있다 해도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질문을 그치기로 작정한 지가 이미 십 년이 넘게 지났지만
사실 그 질문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질문이다.
왜 살아가느냐는 그 질문에 나는 여전히 답을 할 수 없다.
어쩌면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답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같다.
살아감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더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애써 대답을 찾으려는
노력 대신 익숙한 회피로 끝나고 마는 짧은 문답이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물론 스물여덟이란 나이는 그런 질문 대신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돈을 얼마나 펀드에 넣고 얼마나 주식에 넣을 것인지,
주택 구입은 언제쯤 할 것인지 따위의 질문이 더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질문들이 무의미하게만 들린다.
차라리 달은 꼭 존재했어야 하는 걸까, 달이 동주기자전을 하는 건
순전히 우연인 걸까, 모기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도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일가 등등의 질문이 내게는 더 의미있다.
가끔은 답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모기향을 피우는 대신
그냥 물리는 편을 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대한 달을 보면서
경이를 느끼기도 한다.
물론 답을 정해놓고 사는 편이 훨씬 편리하다. 그것은 답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답이 우리의 삶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모기가 존재하는 것은 나름의
타당한 이유에 따른 것이란 결론을 낸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진리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온 우주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된다 하더라도 실상은 달러 약세와 유가 급등의 관계를 이해하는
작은 지식만큼도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대화는 증권사별 CMA 금리를 비교하고,
저축은행의 후순위채 안정성 여부를 논하고,
FRB의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마치
답이 존재하며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인간적이게도 마음에 안 드는 직장상사나
자신의 드림카, 연봉비교, '누가 어디에 집을 샀대' 같은
대화들이 오가기도 한다.
물론 돈이나 직장, 집, 차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은 다른 것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대심문관 부분을
읽어나가며 느꼈던 벅찬 감동이라든가 바라나시 호텔 옥상에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가졌던 편안함이라든가 사실은 말로 할 수 없지만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앞에 있는 사람과 더욱 나누고 싶은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혹은 나는 어렸을 적 겁이 많아서 자기 전에 베개 밑에
후레쉬와 장난감 칼을 꼭 넣어두고서는 잠들기 전에 몇 번이고
확인했다는 이야기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너무 말이 없고 점잖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내 자신이 싫어서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더니
지금은 너무 까불까불해졌어. 이제는 어떤 내가 진짜인지 모르겠어'
따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드물어진다.
'동기가 룸살롱에 데려가서 쐈어'란 말보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려고 시를 썼어'라고 말하는 것이
왠지 더 부끄러운 시대다.
나쓰메 소세키보다 에쿠니 가오리가 더 유명하고
시집보다는 처세술 책이 더욱 잘 팔린다.
그렇다고 삶이나 도덕 혹은 우주에 대한 깊은 고찰이
내가 싫어하는 그런 이야기들보다 훨씬 유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은 칸트의 시대처럼 한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며 사실 단 한가지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리고 실제의 삶과 동떨어진 고루한 질문들이든
실제의 삶에 너무나 밀착한 세속적 질문이든간에 무의한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찾아낸 타협점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찾아낸 길은
그 의미를 찾아내는 대신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질문들을 던져본다.
누군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이나 불행을
느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연봉 1억을 받기 때문에 저연비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세상에 유익한 사람일까?
삶을 탐구하고 진실을 추구하고 머리대신 마음으로 사는 대신
모든 세속적 이익을 포기하는 삶은 과연 옳은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질문들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택한 답은 커녕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의 행복이 최우선이고 좋은 차와 넓은 집,
높은 연봉에 대한 바람이 정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삶과 우주에 대한 질문보다는 어느 룸살롱이 더 좋은지,
어떤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은지에 대한 질문이 훨씬
훌륭하고 보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묻지 않고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묻는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기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린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답이
매번 다름으로 인해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일 수 있다.
나는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 못 된다.
그리고 여전히 머리 대신 마음으로 살아가는 편이 더 좋다.
물론 내게 주어진 것을 뿌리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간다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꼼꼼하게 여러가지를 체크하지도 않는다.
내 삶의 방향을 정해놓고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을 뿐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은 누군가 내게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거나
그럴 의지를 부여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가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할 의지가 없는 사람임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돈이나 자존심 같은 것을 위해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고,
에너지 절약하는 습관을 하나하나 익히고, 맞춤법을 잘 지키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삶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게는 여전히 이기적인 소망이 있다.
매일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무릎을 베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드는 유치하고 소박한 소망이나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나 쓰는 것 따위...
어떤 답을 내놓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하느냐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옳은 질문들에 매달리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는 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정답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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