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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플라톤의 도덕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 자신으로
는 뭐라고 말하나?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앵무새도 이만큼은 할 것이다.
우리 마음이 잘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더 건전한 판단을 갖지
못한다면, 나는 차라리 내 학생이 공이나 가지고 나가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적어도 그 아이의 신체는 더 쾌활해질 것이다...
몽테뉴 '수상록' 제 1권 25장
...제자들에게 카르타고가 망한 날짜를 기억시키기보다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성격을 알려 주고, 마르켈루스가 어디서 죽었는가를
기억시키기보다는 어째서 그가 거기서 죽은 것이 자기 의무에 어긋나는
일인가를 이해시켜야 합니다.
몽테뉴 '수상록' 제 1권 26장
그를 대기 속에, 그리고 불안 속에
살아가게 하라,
호라티우스
학문과 교육에 관한 몽테뉴의 사상은 내가 2002년 가을에 대안학교에서
시도했던 것과 상통한다. 물론 그 실천은 나의 미흡함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의도 자체에는 흠이 없다고 본다.
선생이란 하나의 사상이나 학문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을, 특히 그것들의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전교조가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치경제 사상을
설파하는 것을 결코 옳지 못하다. 물론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접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과 배치되는 부분이 많겠지만 그들이 진정 스승으로
자처한다면 학생들에게 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매년 초 우리 과반에서 행해지는 교양학교에도
이 점이 적용된다. 교양학교의 표면상 목적은 신입생들에게 그들이
접하지 못했을 새로운 사고방식을 알려줌으로써 사고와 이해의
여지를 넓히고자 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적어도 2002년까지는
운동권 및 진보적 시각을 강요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2004년 이후의 교양학교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교양학교의 효용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흥미가 없는 부분이라면 토론 자체가 고통이 될 것이고
흥미가 있는 부분이라면 굳이 교양학교를 하지 않아도 관심을
갖고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학 사회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 무관심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상에 대해서는 먼저 거부감을 보일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일단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지적 자부심을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할 뿐더러,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교양학교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의도와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고 그것이 참여하는 신입생들에게
좀더 명확히 전달되어야 할 것 같다.
5년 동안 눌러왔던 것을 작년에 끝내 하나의 긴 글로 써서 올렸던
적이 있다. 선배의 말은 일종의 권력이자 강요가 될 수 있다는
기존의 우려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에 지친 탓이었기도 하고
이제는 학교에 선배는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나 자신이 이미
충분히 대등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어떤 후배는 나의 논리를 미묘하게 바꾸어 원래 나의
의도를 벗어나 자신에게 유용한 쪽으로만 이용하기도 했고,
나의 글조차 선배의 권력이자 사상의 강요가 된 것 같기도 해
그 이후로 마음이 불편했다. 올해 교양학교에 대한 토론이
촉발되었음에도 아무 글도 남기지 않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나는 나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도 확신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은 장점인 만큼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확신하는 것 만큼 위험하는 것은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1+1=2라는 자명한 공리(왜냐면 수학체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약속이며, 마치 언어처럼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틀이기 때문이다)에는 얼마든지 확신해도 좋다.
그러나 사형 제도 폐지 문제라든가, FTA 체결 여부라든가
하는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쩌면 그것은 그에 대해 의견이 없는 것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아무리 현명한 자도, 아무리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든 자도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는 없으며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없다. 더군다나
현대 사회의 문제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수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개개인, 심지어는 전문가 집단이라 해도 그 모든 것을
고려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아는 작은 세계와
그 세계관을 통하여 문제에 접근한다. 그뿐 아니라 그 접근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바로 결론을 내어 반응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틀에 갇혀 매사에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아집이다.
물론 어떤 사안이 생겨날 때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세세하게
고려하고 고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결론이
명확하고 재빨리 내려진 만큼 그 결론에 대해 의심해보는 태도는
필요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인터넷 언론의 힘이 막강한 것은 우리 나라의
IT 기술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다. 환경은 비교적 열악할 지언정
자유롭게 인터넷 언론을 접할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다.
우리 나라에서 인터넷 언론이 강력한 까닭은 단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지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있어 전문가처럼 말하고, 자신이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도
책이나 신문 등을 통해 얻은 짧은 지식을 통해 쉽게 결론을 짓는다.
그렇다. 우리는 현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지하기까지 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단 한 사람도 그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긴 사람을 본적이 없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이성을 훈련시켜야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할 지식이 부족하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그저 의견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의견이나 견해에 대해 그토록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자기 자신의 현명하지 못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지식의 부족함,
그리고 의견의 불확실함은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안고 가야하는
숙제다.
교육의 첫번째 목적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번째는 아무런 편견이 담기지 않은 지식의 전달이다.
교육이란 그것만으로 족하고, 그 두가지를 바르게 행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길러줄 수 있는 참된 스승이라면
자신의 판단과 사상을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사상을
지나치게 강요하지는 않았나 부끄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불균형한 교육으로 자신의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빼앗기지 않았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제대로 교육을
행했다면 그가 갖고 있는 의견은 옳은 것일테고 그가 가르친
학생도 당연히 그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그와 같은 의견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선생이 자신의 의견이 무엇이라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인데 왜나하면 그런 선생이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내릴리 없으며, 그 학생 또한 현명함을 얻었다면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문단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명한 스승이든 현명한 제자든 모든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자야 말로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부끄러워 해야
하는 사람이며, 우리가 현명하지 못하다고 해서 우리의 후대들도
그럴 기회를 잃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의심하여야만 한다.
사실 모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의심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살아갈만한 곳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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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오랜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