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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말할 수 없음

나는 오늘 두 통의 전화를 받고 두 통의 전화를 했다.
네 통화 모두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다.
이제는 내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할 말이 너무 많은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가 걸었던 두 통은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였는데,
그렇다고 평소에 먼저 연락하는 것도 아니었던 두 사람은
참으로 사이 좋게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냈다.
나는 간간히 '응', '아' 하는 등의 말만을 했고, 내가 걸었다는
사실도 무색하게, 장교 시험이 열흘 후고 며칠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것이 무색하게 그들의 어려움을 위로해주어야 했고
그들의 자랑을 들어주어야 했다.

누군가는 고시 생활이 힘들다고, 누군가는 심심하다고, 누군가는
여자친구가 생겼고 취직이 결정됐다고, 또 누군가는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모두들 그렇게나 할 말이 많은데 나는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전화를 걸고 또 받고서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오감으로 받아들인
것들이 버거워 견딜 수 없다.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듣고 있으면, 무언가를 느끼고 있으면
이내 멍해지고 힘겨워 진다.
그러다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그 이상의 말들, 그 이상의 자극들이
내게 다시 또 쏟아지면, 아니 그저 하나만 더 얹어져도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게 되고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게 된다.

나를 바라보되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내 곁에 있되 그저 나를 내버려둬
달라는 터무니 없는, 이기적인 요구만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짜증을 내는 것이다. 지금의 내 삶은 그런 단순한 반응 이상이 아니다.
역치가 넘어가면 그저 멍하니 단순하게 반응할 따름이다.

그래도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는 알게 된다. 지금 내 중심은 너무나 위에 있다는 것을.
혼란스런 머리 한가운데 무게중심이 있어 자그마한 자극에도
크게 흔들리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또 두려워진다.
내가 누군가를 울릴 수도 웃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라는 미약한 존재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무심함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프고 슬프게 할까.
어째서 나의 이 나약한 힘마저도 어떤 생명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어떤 생명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일까.
이 나약한 힘마저도 나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솔직히 더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의 이 나약하고도 거대한 힘보다
타인의 힘, 나의 삶과 나의 일상과 나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는 타인의
힘이다. 겨우 찾을 나의 평화는 또 얼마나 쉽게 무너질까.

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강하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
할 수 있는 말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약해지지 말아야지.
아직 내게 남은 날이 너무나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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