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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A big problem

느슨해지는 순간 악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내 인생 처음으로 찾아온 마음의 평온을 한껏 누리고 있던 그 순간에도
악은 야금야금 나를 잠식하고 침식하고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나는 내가 언제나 두려워하던 그 악으로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언제나 가장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그렇게 되기를 두려워했던
그 사람 혹은 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치열하게 싸워내지 않는 이상, 매순간 버텨내지 않는 이상,
한순간 마음을 놓는 순간, 평안함에 익숙해지는 그 순간
아니 그 평안함이 찾아오는 그 순간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던 걸까. 아니, 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걸까.

내 마음이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된 그 순간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고통 또한 잊었고, 내 영혼이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때
나는 다른 누군가의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더이상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인간의 영혼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 혹은 그 사람들과 같게 되었다.
내가 현실의 모든 것을 모두 놓을지라도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혹은 믿고 싶었던 그 하나를 놓고야 잊고야 말았다.
그 언젠가 나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던 그 모습이
결국에는 지금 나의 모습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조금의 후회도 하지 않는다.
아, 그런 거였군요. 이렇게 평안한 거였군요. 당신이 누리던 것은.
당신이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당연한 거군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의 그 추한 모습을 여태 보아왔기에
당신과 똑같이 살아갈 수가 없으니 조금은 원망을 해야하는 건가요.
아, 그런 거로군요. 시간이 지나면 나도 당신과 똑같이 추악해지는 거군요.

말을 엉망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글을 끄적이는 것마저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내게는 결코 익숙할리 없는 지금의 평온함이 이상하게도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지면서 나는 불안을 느낀다. 나는 이 평온함을
계속 누려도 되는 걸까. 계속 누린다면 나는 결국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결코 벗어나고 싶지는 않은
지금의 평온함.
나는 언제나 평온함을, 그 평온함이 주는 휴식에서 얻는 힘을 원했다.
옳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힘,
나 자신을 버릴 수 있는 힘.

우리는 조금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돼.

나는 당신같이 자신을 위해서만 강해질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지금 이 곳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당신을 닮아가는
나의 모습에서 다시 또 두려움을 느낀다. 때로는 왜 이렇게 되어가는가 하고
때로는 왜 이렇게 늦게 당신을 닮아가는가 하고.

서서히 하나하나 생각하는 대신 그것들을 몸에 익숙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아주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어가며 다시 또 생각을
서두른다.
누군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며 잡소리를 늘어놓아도
누군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끝없이 의견을 쏟아놓아도
누군가 내게는 추악하게만 보이는 매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도
내가 침묵하는 것은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거라고
가장 옳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거라고
그 누구와 함께라도 그 어디에 있어도 나 자신을 버리고
내가 해야할 일과 내가 하지 않아야 할일들의 거리를 아는 거라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항상 나 자신을, 나 자신의 부족함을,
타인을, 삶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리고 또 모든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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