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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이야기들

▷ 올호르의 독백

나는 바닥입니다. 내 위로 곱게 내려앉아 있던
- 아주 약한 바람에도 흩날려 부유할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그토록 마음 졸이며 조심스레 대하던-
그 무언가가 부유하기 시작하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한 번 날아오른 것은 절대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애써 잡아 두려 애를 씁니다.
한 번 날아오르면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부유하기 시작한 그것이 기적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혹은 운 좋게도 다른 그럴 듯한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

그러나 처음부터 바람이 아주 없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는 그 바람에 맞서 내가 애써 잡아두었던 것이기에
한 번 날아오르면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내 탓이 아니에요. 결코 내 탓이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어요.
말했듯이 나는 바닥입니다. 날아올라 부유하는 그것을
낚아챌 수도 없는, 부유하던 그것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그런 바닥이라고요.

언뜻보기 내 위로 살짝 올려있던 그것은 사실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날아오른 것은
쉽게 다시 내려올 수 없어요. 더이상 잡아주는 것이 없어
아주 작은 바람에도, 예전에는 우리가 함께 코웃음을 쳤던
그런 바람에도 다시 부유하고 부유하고 또 부유하는 겁니다.
그래요. 나는 바닥이에요.
정말이에요, 나는 기분이 바닥이에요.

▷ 펜디르의 이야기

물론 가로등이 여기저기 서 있었어요. 그렇지만 가로등 사이사이에
조금 어두운 곳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곳도 그런 곳이었어요.
나는 바닥을 보며 걷고 있었는데 - 평소에는 잘 그러지 않는데 말이죠 -
갑자기 깨진 유리 조각들이 널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는 별다른 걱정없이 그것들을 그냥
밝고 갔더란 말이죠, 뿌드득 뿌드득 소리가 나기를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어요. 나는 조금 어이없어 하면서
고개를 들었죠.
아!
왜 '아'냐고요? 그 위에 벚나무가 있었거든요. 내가 밟은 것은
유리 조각들이 아니고 그저 보도 위에 흩어진 벚꽃잎들이었던 거죠.
그때 나는 알게 되었던 거죠.
벚꽃잎은 깨질리 없다는 걸. 깨져 있던 건 나의 마음이라는 걸.

▷ 스밀라의 편지

일루샤, 나는 오늘 오랜만에 잠을 푹 잤어. 정확하게 말하면
잠을 설친 후 일어나 조금 돌아다닌 후 다시 누웠지. 그리고는
비로소 단잠을 잘 수 있었던 거야. 어쨌거나 지금은 기분이
개운하니 나는 개의치 않아. 덕분에 나는 아침에 평소보다
조금 더 집중해 신문을 읽었고 평소보다 가벼운 몸으로 집을
나섰지. 나는 원래 비를 싫어하지만 오늘 정도의 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다지 습하지도 않고, 머리는 맑고, 나쁜
일들은 모두 지나갔으니까. 물론 기분이 아주 좋지는 않아.
왠지 모를 불안이 스물스물 거리고 있는 걸. 그렇지만
그런 불안 따위는 언제나 있었던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야 하는 거겠지? 그런 불안은 오늘같이 평온한 날마다,
평생 그 언제라도 내 마음이 편안하면 편안할 수록 다시 또
찾아올테니 나는 그냥 웃으며 지나쳐야 하는 거겠지?
일루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54	靜化	Giverny	2007/06/20	461

53	changez vous-meme	Giverny	2007/06/18	329

52	잠이 오지 않는 밤	Giverny	2007/06/09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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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바람이 불지 않는 저녁 [35]	Giverny	2007/06/03	487

49	별	Giverny	2007/06/02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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