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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납득할 수 없다

구원이 없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렇지만 휴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논리라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 그 근간이 되는 하나의
준거가 거짓이라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보통은 납득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 하나가 꼬이면 엉망이 되는 논리 따위.

사람들이 종종 말하기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나란 인간을 보라. 지난 10여년간 얼마나 터무니 없이
격하게 변해왔는지.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 동기들과,
대학원 사람들에게 모두 다른 인간으로 비치는 나란 인간을 보라.
그러나 사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나 이외에 변한 인간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인간이 뭔가에 집착하는 것만큼 꼴보기 싫은 것은 없다.
뭔가에 얽매이는 인간은 이미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은 똑바로 나간다고 생각해도 그 줄이 언제나 팽팽히 당기고 있고
그리하여 결국은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모네에 집착하고, 죠니 뎁에 집착하고, 평범 콤플렉스에 집착한다.
대체 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터무니 없는 소망을 품게 되었을까.
언젠가 강선미는 평범함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말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사실은 내가 그 평범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란 것이야 말로 대단히 비범한 것이란 것 또한
잊고 있었을 따름.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평범한 여자인
정복이를 이성으로 느낀 적은 지난 6년 동안 단 한 번도 없다.
이것 또한 조정복의 비범함인가 싶다.

아무튼 나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의 취향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끔찍한 독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내가 모네를 좋아하면 좋아할 수록,
죠니 뎁을 좋아하면 좋아할 수록 그들은 내게 독이 된다.
내게 쓸데없는 집착...아쉬움...그리고 또 수많은 불필요한 노력들을 안겨준다.
내가 종교를 싫어하는 이유 또한 다름 아니다. 인간을 얽매이게 한다는 것,
이유는 단지 그 뿐이다.
근데 나는 수많은 집착에서, 수많은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대체 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가...

내일은 기필코 제대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요원해 보인다.
이 시간에 누군가 깨어 있을까?
언젠가 자다가 전화 받았을 때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는 악랄한 이유로
새벽 4시에 전화를 했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주고 싶은 그런 밤.

비난 받을 일로 비난 받는다면 나는 겸허히 수용하겠다.
그런데 대체 왜 언제나 비난 받아야할 일들은 웃으며 넘어가고
터무니 없는 일들에서 비난을 받곤 하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
사실 인간사를 납득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오래 전에 포기한 일이지만...

나는 자신감 넘치는 인간을 경멸하지만
자신감 없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결코.
.
.
그나저나 부사를 뒤로 빼는 이 못된 버릇은 대체 언제부터 생겼을까.
그나저나를 한 번 더 쓰자면
그나저나 나 자신을 경멸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는데
기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 기뻐하는 것도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공부 열심히 하기로 하고 겨우 컨디션 조절하는 날마다
일이 생기는 내 인생만큼 이상한 지는 잘 모르겠다.

담배를 한 대 또 물었다가 폐가 정말 썩을 것만 같아서
예쁘게 곽에 다시 넣어 놓았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떠들어 놓고서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는 뻔뻔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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