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 후면 자대에 온 지도 만으로 1년.
하지만 여전히 주말을 보내고 대대 본부 건물로 들어설 때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경례에는 익숙해지지 못했다.
17시 30분에 병사들을 놔두고 혼자 퇴근 버스에 오르는 것
역시 여전히 미안하고, 가끔 맛있는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난 언제든 먹고플 때면 먹을 수 있는 거라서 또 미안하다.
'-습니다'로 끝나는 그들의 말투에도 여전히 익숙치 못하다,
종종 '형, -해요'라고 말해주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물론 그러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연말에 새해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정말 아무런 소원도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것이 애매해졌다.
딱히 뭔가 바라는 것이 생각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구체적인 무언가 간절하지도 않다.
그나마 담배를 끊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겨우 다시 들기 시작했고,
부대에서 사고 없이 마음 편히 계속 지냈으면 좋겠고
(최근 조금 불안한 마음이 생겼는데 어쩌면 내 모든 불안정은
그것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연말만큼만 영원히 평안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들도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다.
그나마 가장 간절한 것은 단 하나라도 간절히 원하는 나인 듯하지만
난 여전히 뭔가 하나에 간절하거나 집착하는 사람이 싫고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착은 마음의 균형을 잃게 하고 사람의 장점보다도 단점에
민감한 나는 그것을 추하다고 인식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을,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단점보다 장점을 보는 것을 연습 중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보통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몇 년 후에 자신의 단점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을 확인하는 편이 낫다.
보통 누군가 마음에 들 때는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했을 때지만
그 사람과 자주 부대끼고 오랜 시간을 보낼 수록 그 사람의
단점에 민감해지게 된다. 요컨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달려 있다.
장점의 총점이 단점의 총점보다 높은가 보다는 내가 견뎌낼 수 있는
단점인가 아닌가의 문제다.
내 경험상 여자애들은 종종 상대가 자신의 단점을 사랑해줘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환상에 묻혀지내는데 내가 아는 한 그건 어디까지나
견딜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지 결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누군가에게 바랄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단점이 타인에게 견딜만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단지 내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관대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일 뿐이고, 그런 이유로 내 주변에는 언제나
착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다. 그 점에 있어 나는 한없이 감사하다.
오랜만에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써나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마음이 다시금 불안정해져 있고, 그 불안정함이 쓸데 없는 말들이
터져나오게끔 종용하고 있고, 그 종용에 저항하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도 공허하기 때문이다.
난 언제나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훌륭하게 살지 못한다.
누군가의 죽음과 배고픔, 추위와 공포보다 나를 위한 작은 유희와
그 누구에게도 아주 짝에도 쓸모 없을 순간적인 쾌락들이
내 마음 속에서 훨씬 큰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세속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부나 명예 따위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다소의 경멸과 질투가 섞인 애매한 감정으로 거부를 표하는 것이
진심으로 더 고매한 영혼의 여정과 인류 전체에 대한 애정의 발로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의 게으름과 변명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그 둘 사이에서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뿐이라면 좋겠지만
단지 후자일 뿐이며 전자는 그저 비겁한 위선으로 가득한 변명에
불과함을 스스로 확신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도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모든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것과
단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일까?
아니, 어떤 것이 더 행복한 것일까?
아주 아름다운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지켜나가기엔 버거우니까.
설렜으면 좋겠어 지금보다 조금 더. |
|
0
278 
11/20 
where is the ans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