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78 　11/20

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무겁다

언제나 내 안에 거대한 선과 거대한 악이 공존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건 내가 믿어왔던 것처럼 내 안에
같은 크기의 선과 악이 존재해 그 둘이 격렬히 싸우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의 악이 더 컸기 때문이었음을 안다.
물론 그만큼의 선마저 없었더라면 훨씬 평안했을테지만.

내가 이렇게 편안히 나 자신을 반추하고 반성하고 혹은
매번 그랬듯 스스로를 동정하고 유희를 즐기고 사유라는 이름으로
저급한 말들을 쏟아냈던 그 시간에도, 심지어는 내가 웃고 떠들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조차 누군가에게는 삶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정말 내가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다면, 나 자신이 나의 삶을 포기하고
내가 믿는 것만큼의 일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버릴 수 있는 것들만이라도
모두 버려야 할 것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혹은 뉴스에서 발견하는 그 모든 아픔의 장면들이
내 안에서 그저 동정과 안타까움으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내가 누리는 이 저주받은 풍요 속에서 나 자신이 결코 만족하지 않기를,
내가 보고 듣고 읽은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잊어버리지 않기를,
존재론과 형이상학적 사고 따위에 매몰되어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그저 행동하고 사유하는 시간은 온통 그들을 위한 것이 되기를,
무엇보다도 내가 갖고 있는 자유와 풍요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언제나처럼 말로 그치기에는 생명과 고통의 무게가 너무도 크다.


138	where is the answer?	Giverny	2009/01/20	303

137	증오	Giverny	2009/01/11	358

136	모두 어디로 갔는가	Giverny	2009/01/10	368

135	착각	Giverny	2009/01/07	333

134	새해 소망	Giverny	2009/01/02	403

133	보라	Giverny	2008/12/31	362

132	keep it	Giverny	2008/12/22	386

131	칸쵸 [2]	Giverny	2008/12/22	407

	무겁다	Giverny	2008/12/12	438

129	le grand homme	Giverny	2008/12/12	465

128	발푸르기스의 밤	Giverny	2008/12/09	426

127	쓰잘데 없는 이야기들	Giverny	2008/12/07	439

126	like a virgin	Giverny	2008/12/03	446

125	운전 [2]	Giverny	2008/11/29	405

[prev] [1].. 11 [12][13][14][15][16][17][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