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틴 가드너 주석판이 도착을 했답니다.
전부터 무척 읽고 싶던 것인데 절판이 되어 중고도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달 전쯤 새로 번역이 되어 나왔지요. 책은 엄청나게 커서 예전에 한참 팔리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편집도서들만하더군요. 웬만한 경제학이나 공대 원서 교재 크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시다시피 루이스 캐롤의 작품인데 루이스 캐롤은
영국의 한 수학자의 가명이고 (본명은 기억이 안나네요) 그가 그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은
자기 친구의 세 딸 중 둘째인 앨리스를 위해서입니다. 루이스 캐롤은 후에
친구에게 앨리스와 자신을 결혼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당연히 미친놈 취급을
당했지요. 그러나 그의 역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저 미친놈의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의 기괴한 모든 것들 안에서 단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것만 찾으려 한다면 크나큰 실수이고, 그 안에서 사회풍자적인
메시지만 찾으려는 것도 지나치게 심각해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루이스 캐롤은 수학자였고 수학적인 다양한 장치들을 그의 작품 안에 넣었습니다.
마틴 가드너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90년대 중반 다양한 퍼즐 및 패러독스
관련 책들이 출판될 때 가장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사람이 마틴 가드너입니다.
(그 유명한 '이야기 파라독스'의 저자입니다)
마틴 가드너는 수학자고 그가 주석을 달았다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내의
수많은 유희와 비유에 대한 친절한 해석을 달았다는 것이죠.
(90년대 중반 마틴 가드너가 쓴 책들은 대부분 대중들을 위한 즐거운 지적유희를 위한
책들이었습니다)
엘리엇의 시나 제임스 조이스의 글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어떤 식으로
변용되어있는지도 나타나있습니다. 마틴 가드너는 20세기 미국 최고 천재 중
하나로 추앙될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학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일본 만화들을 통해서입니다.
일본 만화들은 우리나라 만화들에 비해서 굉장히 치밀한 조사와 연구를 밑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 많지요. (허영만의 식객 정도되는 작품이 부지기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몇몇 만화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뤘는데 가장 애정을 듬뿍 담아
다룬 작품은 '암스'입니다. 암스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들에서 따왔습니다. 단순히 재밌는 동화에서 따왔다고
생각하기에는 암스는 심각한 작품입니다. 인류는 어떤 존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등의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만큼 작가가 내놓는 답이
무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충분히 훌륭한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 곁가지로 새어버린 것 같은데, 굳이 암스란 만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저 '요상한 동화'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물론 먼젓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축약본과 일어중역판이 판을 쳤던 우리나라 독서시장의
한계라고 생각됩니다만 독자들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겠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동화'가 아니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거기서 풍자를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이며 '풍자소설'인 동시에 '지적유희'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적 유희 말고도 언어적 유희도 잔뜩 등장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보르헤스가 위대한 작가임에도(물론 저는 그런 의견에 관심조차
없습니다만 다들 그렇게 말하지요) 보르헤스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카프카가 위대함에도(조금 조심스럽게 '도대체 왜?'라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현실에서 (안다해도 대부분은 교육에 교육을 더해
알게 되겠지요) 모르는 사람은 동화로, 아는 사람은 하나의 '풍자소설'로 혹은
'언어실험'으로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지적유희'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위치가 정해진다고 봅니다.
결국 하나의 텍스트가(혹은 예술이) 일반독자의 학습과 이해를 강요하는
현대 문학의 현실에서 독자의 수준에 따라 자유롭게 읽힐 수 있는
(그리고 각각의 경우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훌륭한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텍스트를 쓰게 된 동기 자체는 매우 불순하고 당황스럽습니다만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며 이중생활을 한 호프만이나, 어렸을 적 동생의 죽음에 대해
노년이 다 되어 창문에 돌을 던지며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괴테나
'사회에 반항하기 위해 동성애를 한다'는 알쏭달쏭한 논리를 펴는 오스카 와일드
같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사람들을 생각할 때, 그리고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때 갖는 느낌을
생각할 때 저에게는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풍문대로 제가 롤리타콤플렉스가 있어서 루이스 캐롤을 옹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연작으로 되어있습니다.
어제 오늘 책들을 잔뜩 구입해서 뿌듯한 마음에 주절주절 써봤습니다.
---------------------------------------------------------------------------------
사족을 조금 달아보면
이번에 출판된 앨리스는 <주석 달린 앨리스> < 더 많은 주석 달린 앨리스>에 이은
세번째의 완전판이며 번역은 해리포터 시리즈, 프랭크 바움의오즈의 마법사 (전 1권만 있지요) 시리즈
등을 번역 하신 최인자씨가 하셨는데 솔직히 번역된 문장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언어유희가 많아 전에 구입한 영어 원서를 옆에 두고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다소 심한 오역도 가끔 보입니다.
그리고 1960년대 <주석 달린 앨리스>의 서문은 흥미롭게도 제가 전에 언급한
<브라운 신부>시리즈를 쓴 G.K. 체스터튼이더군요.
앨리스 시리즈는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그런 작품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만 영문학 쪽에서는 상당한 고전으로 인정 받고 있는듯합니다.
우리 학교 영문과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는지 궁금해지는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