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고 있었다. 여인과 아이와 함께였다. 아이는 차마 울지도 못 하고, 살기 위해서는 달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듯 ,애처로울 정도로 힘겹게 달렸다. 여인과 나 또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뒷쪽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끊임없이 들려왔고, 그 대부분은 우리를 멈추게 하기 위함이란 것이 분명했다.
아이가 넘어졌다. 나와 여인은 서로 한 번 눈짓을 교환하고는 아이를 바로 세운 후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다. 나는 헐떡거리는 숨을 참아내며, 넘어져 생긴 상처를 용케 참아내고 있는 아이와, 아이가 울음이라도 터뜨릴까 하는 불안으로 가득 찬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지난 3일 동안의 일들이 순식간에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3일 전까지 나는 수원에 있는 한 양로원에 머물며 노인들을 돌보고 있었다. 일년 전 양심에 따라, 폭력과 광기의 산물인 군대와 총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복무기간이 4년쯤 남아있었지만 대체복무를 선택한 것은 나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고, 노인들을 돌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만족했다. 그러나 갑자기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서울에 있던 절친한 친구 A는 황급히 내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일하던 양로원 부근에 사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폭력적인 전쟁에 분노할 새도 없이 친구의 부탁에 따라 그들을 데리러 달려갔다.
적의 군대는 순식간에 우리가 있는 곳 부근까지 밀어닥쳤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의 처와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전쟁에 참여하거나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다.
적의 군대는 순식간에 시가지로 들어왔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살기 위하여.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기에 생각은 여기서 끊겼다. 주변은 여전히 총성으로 가득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숙여 아이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깊지는 않았다. 주위에는 수많은 군인들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그들이 자신의 삶과 함께 놓아버릴 수 밖에 없었던 총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나의 양심은 총이라는 폭력적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 용납하지 않았고 내가 대체복무를 선택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총은 내게 혐오스런 물건이었다.
여인과 눈짓을 교환하고 다시 걸음을 떼려는 순간 골목 입구에 적군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그 병사는 자신의 부대와 떨어져 여기까지 혼자 온 것 같았다. 그는 이내 우리를 발견하고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한 여인과 다친 아이를 데리고 그 병사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망적인 시선으로 친구의 처와 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때 내 발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발 바로 아래에 총 한 정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결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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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국어 양심적 병역거부 반대편 조라서 쓴 글.
약간 수정 되어 배포되었음.
처음으로 낭독을 전제로 글을 써 봤다.
그러나 시간관계상 낭독은 되지 않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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