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불문이반 신문을 제작하면 첫 호에 넣으려던 주제였습니다만
모 학생들의 탈주로 인하여 신문제작계획이 취소됨에 따라 그냥 여기 적어봅니다.
여기저기서 컨버젼스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mp3와 핸드폰과 카메라가 결합하는
굉상한 메카닉 키메라가 횡행하고 있는 현대에 글자매체에 있어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역사를 알리기 위하여 소설의 형태를 이용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고 오늘 일간지 책서평란에서도 한 국제정치학자가 20세기 대량학살을
소설의 형태로 표현한 데모사이드란 책이 눈에 띄더군요. 이러한 문자매체의 컨버젼스
상화에도 불구하고 장르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천대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보통 추리, sf, 판타지를 말합니다. 가끔 무협을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달 전 중국에서 김용의 무협지가 교과서에 수록된다는 기사도 났으니 충분히 고려할
만한 상황 같습니다. 그러나 추리, sf, 판타지, 무협 등을 논하면 보통은 심심풀이로 읽는
한심한 책으로 취급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정을 살펴보면 장르문학에서도 경계가 있습니다.
추리, sf는 보통 상당한 식자 층들이 팬덤을 구축하는데 반해 판타지, 무협의 팬덤은
비교적 식자층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그들 팬덤 중에도 식자층은 상당수입니다.)
이 주제에서도 다루고 싶지만 판타지나 무협은 제가 읽은 것이 거의 없는 관계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식자층이란 용어가 거슬립니다만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추리문학의 효시는 보통 애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는 환상소설, 추리소설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습니다만 문제는 포는 일반에서도 문학적
가치를 인정 받는데 반해 그의 추리문학들은 그 가치를 인정 못 받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포뿐만이 아니라 레이몬드 챈들러의 경우 하드보일드의 완성자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인정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하루키의 경우 챈들러 문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적이 있는데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챈들러란
인물의 존재도 모를 뿐더러 그의 작품이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얼마나?)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쓴 체스터튼의 경우 당대 최고 철학자 중 하나인 러셀과
철학적 논쟁과 교우를 유명한 철학자였고, 작품 자체도 굉장히 사색적이고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추리소설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치 인정을 못받지요.
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이나 아쿠타카와의 덤불 속 같은
경우도 추리소설이라 부를 수 있지만 그렇게 분류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를 버럭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sf 쪽을 보면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같이 신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 작가나
로버트 하인라인 같이 유토피아 소설을 통해 다양한 정치적 사고실험을 시도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판타지의 경우 어슐러 르귄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 작가군이 과연 문학적 능력과 결과물만큼 인정을 받고 있느냐하면
그것은 절대 아닌데 그 이유는 절대적으로 편견에 기인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장르문학 중 sf에서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편견을 심어주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제 홈페이지에 가끔 언급하는 쥬라기 공원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다이하드와 스피어 등을
썼고 꽤나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99%는 스필버그 감독이
찍은 쥬라기 공원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영화죠.
저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 중 쥬라기 공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들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소설은 여러 개의 장으로 나눠져있고, 각 장의 첫부분에는 비선형곡선이 등장합니다.
비선형곡선은 갈수록 복잡하게 되어 작품이 끝날 때쯤에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괴상난잡한 외계 도형물이 되어버리는데, 그것이 그 소설의 주제입니다.
비선형곡선이란 프랙탈을 의미합니다. 프랙탈은 조금 생소한 용어일 수도 있으니
다시 설명드리면 카오스이론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입니다.
첫부분에서 한 남자가 공룡 알을 훔치려고 잠시 전기를 끊지요? 그리고 그 전기가
복구가 안되면서 모든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잠시 전기를 끊는 것은 그 남자의 생각대로 보통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엄청난 파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비효과지요. (이 말은 아주 익숙하시겠지요) 결국 논리적 귀결과 상관없이
사소한 그 무엇이 엄청난 결과를 일으킨다는 것이 소설의 주제입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되실지 모르겠지만 소설이 출간될 당시가 1990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 때는 카오스 이론에 관한 책은 거의 나오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영화는 1993년에 나왔는데 그 때 역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카오스 이론을
알고 계셨던 분은 그다지 없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비슷한 때 쯔음해서
빨간색 표지의 '카오스'라는 책이 나왔었는데 그리 읽기 좋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당시 최신과학 이론이며 사색할만한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공원은
스필버그의 무개념각색을 통해서 풍성한 볼거리로 가득한 가족영화가 되어버렸지요.
저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치를 떱니다.
그리고 1,2년 전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필립 .K. 딕의 작품을
각색한 것입니다. 딕의 작품은 영화화가 많이 되었는데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단편은(딕의 단편집이 집사재에서 나와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되었고,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토탈리콜이 되었습니다.
토탈리콜이나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는 제가 잘 모릅니다만 두 작품의 경우는 비교적
원작의 사색적이고 철학적 부분을 잘 살렸다고 듣고 있습니다.
제가 그나마 논할 수 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되어버린 감이 있습니다만 소설의 경우는 모순율의
해결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예언자의 상방된 예언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 결국 상반된 두 명제는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가를 다루고 있죠.
그러나 영화에서 이러한 주제가 얼마나 다루어졌는가는 의문입니다.
추리소설이나 sf 소설 그리고 여타 장르소설들이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입니다. 보통 완역이 아닌 발췌 번역본, 아동용 판본, 재미에 치중한
영화를 통해서 그러한 통념들이 설정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문학에 있어서도
최근에 와서야 완역본들이 늘고 있지 대부분 일본어 중역본이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추리소설은 인간 성격의 특성을 극단의 예로 보여주며 다양한 사회의 단면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f는 심원한 주제를 통해 궁극적 문제에 대한
사색의 기회와 견해를 제공해주고 있고요. 판타지의 경우에도 로저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의 경우 우리의 삶은 본류인가 아니면 그저 어떠한 본류에 대한 모방에
불과한가에 대한 고민을 남겨줍니다. 장르소설은 신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그 어느
분야에 있어서도 훌륭한 논쟁거리와 이야기거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 점을 간과한 채 그저 재미에 치중한 하위장르로만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저에게는 무척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장르문학은 그 재미를 통해 심오한 주제에 대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장미의 이름이나
다빈치 코드의 경우도 일종의 장르문학임에도 그렇게 생각되어지기 이전에
그 현학성과 교양성을 토대로 장르문학에서 빗겨 분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교양들이 얼마나 효용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저는 부정적
입장을 취합니다. 솔직히 그런 책들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일반 대중의 지적인
부족함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에 기인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장르문학의
부진은 장르문학 자체가 가진 부족함보다는 독자층의 위선과 부족함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할 것입니다. 실제로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장르문학이
이처럼 홀대 받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장르문학은 읽혀야 하고 또 존중 받아야만 합니다. 장르문학이 그 자체가 가진
부족함 때문에 읽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편견과 흐름 속에서
무시당하게 된다면 그것은 독자로서도, 수많은 작가들로서도 손해일 것입니다.
편견을 잠시 접고, 유명한 장르문학을 한두권 천천히 읽어보시고
책꽂이에 있는 유명한 소설이나 문학작품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좋은 책을 읽는 소중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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