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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내가 죽어버린다면 굉장히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써야만 하는 글, 내가 너무나 쓰고 싶은 그 글을 생각하면서 -
그 글이 시작되었는데, 완성되지 못하고 내가 죽어버린다면
그 모든 말들이 그대로 닫히면서 하나의 완전할 수 있었던 세계가
불완전한 채로 닫히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말로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써야만 하는 글, 쓰고 싶은 글 같은 것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런 막연한 환상을 품은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슬픔을 느낀 것은 그런 글이 언젠가 나타나게 되리란 믿음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완전무결함, 영원함에 대한 나의 이상이 낳은 또 하나의 환상 때문이리라.
징징 거리지마.
나는 그런 징징거림을 받아줄 수 없어.
나는 삶의 소소한 부분일랑 모두 걷어치우고 터무니 없이 큰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온 사람이야. 언제나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가는 대신 내 방은 언제나 엉망진창인
채로 놓아두는 그런 사람이야. 내 신경을 자극하는 자질구레한 일은 애써 외면하고
더 큰 즐거움이나 더 큰 슬픔에 몰두하는 사람이야.
물론 아주 소소한 것들에 집착하기도 해.
하지만 그건 내가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의 작은 기분변화에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든가, 내 방문에 걸려 있는 인형이 방문이 닫힐 때마다 문틈에 끼일 때
아프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서른 한 살인 지금도 여전히 하면서
결코 그 인형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지는 않는 그런 무책임하고 예민한 감각일 뿐이야.
요컨대 나는 예민하고 작은 것들에 항상 신경쓰지만,
네가 그런 투정을 나와 공유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나란 사람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아무 말 하지 않는다면 나는 세심하게 네가 할 일을 대신 해주겠지만
네가 말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느끼는 건 안타까움이 아니라 귀찮음일 뿐이다.
문학은 여전히 소중한 매개물이다.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개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문학을 매개로 공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누가 나쓰메 소세키를 너무나 좋아해 천 엔짜리 지폐 도안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사라졌을 때 나만큼이나 분노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으며 깊은 슬픔과 공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슬픔과 공감만이 줄 수 있는 남모를 쾌락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것은 그저 서로의 것일 뿐이다.
같은 매개물을 통해 비슷한 종류의 감상 혹은 기분에 빠졌다는 공감에서 오는
어떤 기대감은 서로의 다름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 줄 뿐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쓰메 소세키나 나보코프를 나만큼 좋아한다고 하면
그건 그 사람과 나의 차이가 어느 순간 극명히 드러날 것이라는,
그래서 우리는 소세키와 나보코프를 모르는 그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보다
더 뼈저리게 서로의 다름을 느낄 것임을 말해 줄 뿐이다.
소세키의 씁쓸하면서도 따듯한 애정이 담긴 그 글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말로 해질 수 없는 것은 말해져서는 안 되기에',
그리고 설사 우리가 어느 순간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고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하나하나의 단어에 하나하나의 조사에 담는 뉘앙스와 그 이해의 방식은
너무나 다르므로 결코 공유될 수 없다.
그건 늘씬한 여자가 지나갔을 때 남자들의 침묵의 시선이 공유하는
동질감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 동질감이란 어찌나 분명하던가.
문학은 우리를 이어준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 주는 것 또한 없다.
텍스트의 여백에 적히는 우리의 사상과 감정은 각기 다른 언어로 적힌다.
독서가 누적되어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자신만의 언어와 세계가 새로이 열릴 수록 우리는 점차 서로 멀어져 간다.
우리는 차라리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누군가와 더 가깝다.
술을 마시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와, 결코 다시는 보지 않을 누군가와
쉽게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만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인들 사이의 관계와는 달리 그들은 다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욕망 이외의 것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이라는 훌륭한 조력자는 그것을 더욱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그들은 다음 달에 있을 생일 선물이라거나, 상대의 자질구레한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든가하는 것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모든 욕망이 사그라드는 그 시점 뿐이겠지만
그것도 몇 번인가 반복하며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문학에 대한 기나긴 토론보다도 잘록한 허리와 늘씬한 다리가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훨씬 더 가치있는 것이다.
소세키와 나보코프의 소설에 대해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는 여자와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 완벽한 몸매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나 확률의 문제로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깊은 고독을 다루는 문학 만큼 공감이란 착각을 이끌어내기 좋은 도구는 없다.
각자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 맞닿아 있다고 느끼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내밀한 부분은 결코 같을 수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는 부분이라서
언어로 전달하려는 순간 서로를 절망에 빠뜨릴 뿐이다.
그 내밀한 바닥에서조차 서로 닿지 못함을 깨닫는 고통을 더할 뿐이다.
조용한 죽음으로 끝나거나, 서글픈 섹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그 긴 글의 여백에 서로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들을 채웠음을 고백할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유혹받고 싶음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자질구레한 일들로 나의 예민한 신경을 더욱 날서게 하는 그런 타인의 일상보다
서로 다름을 굳이 직시하게 만드는 그런 어설픈 동질감에 대한 착각보다는
얼어있는 나의 욕망을 단숨에 녹아내리게 하여
나를 오랜 침잠으로부터 끌어올려 줄, 가련한 그 환상을 끝내 줄,
불가항력이라 말하겠지만 그것이 변명임을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
사실은 오래도록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붕괴의 순간을 -
그런 유혹을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정신과 육체, 완벽과 영원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워 온
이 지겹고 고통스런 혼란의 틈에서 단숨에 나를 넘어뜨려 줄 유혹을 원한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오랜 거부감을 극복하고 그에 대해 적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그런 문제에 대해 너무나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문제를 회피해 왔다.
그러나 실상 돈과 섹스가 결부되지 않은 문제가 세상에 얼마나 있던가.
그리고 그토록 철저히 외면하던 그 두 가지에 이토록 끌려다니기 시작한 것은
또 언제부터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영원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써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재능이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도 있겠지만
실은 내가 왜 쓰고 싶어하는지, 왜 써야 한다고 느끼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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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arious 
읽히지 않을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