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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부대 소고

윤지민에게 또 탁구를 졌다.
세트 스코어 3-3에서 21-19로 패배.
나는 결국 윤지민을 이길 수 없는 건가.
보름 정도 지나면 더이상 지민이랑 탁구도
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뭐, 어차피 평생 볼 거 같긴하지만.

내가 머리를 빗고 출근하면 다들 내가 약속이
있겠거니 짐작한다. 오후가 되면 소개팅 한다고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다 상병 꺾인
녀석들과 나누는 대화다.
오늘 희수가 처음으로 말을 길게 하길래
웬일로 말이 많냐고 했더니 아직 짬이 안 될
뿐더러 내가 말을 안 걸었다나.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언제부턴가 친한 녀석들과만 친하다.
병장 중 일부는 내게 팔짱을 끼거나
뒤에서 허리를 껴안기도 한다
(차라리 대대장님한테 가서 해라-_-;;)
모두에게 공평하자는 처음의 마음 따위는
날아가버린 지 오래.
말년을 누리고 계신 윤지민 병장께선
내가 여전히 공평하다고 말하지만
생각해보면 단 한번도 공평한 적은 없었던 듯.

어렵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 모든 것에,
모든 사물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또한 그 모든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누군가 더 예뻐보이고 누군가 더 아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나이고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연애에 있어
'내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은
네가 원하는 그 어떤 사람도 되어줄 수 있다'는 명제를 깔고 있는데 반해
(다시 말해 전제가 깔려있는데 언제나 연애 초반에 그 전제가 무너지는 거다)
부대에서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면 누구라도 알아줄 것이다'는
명제 하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가 알아준 것에 너무 빨리 감사하고 만족하여 초심을 잃은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누군가 소외 받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세상 다른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부대 안에서처럼 좁은 인간관계, 그리고 몇 안 되는 영외자가
몇몇만을 더 아낀다면 그 소외감은 더 클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으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마음은 사람의 마음 속에 쉽게 자리잡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포기하거나 상처받을 뿐이다.

어렵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게 너무 소중한 일이다.
더 넓게 보고, 세심하게 쓰다듬는 것,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혹은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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