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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연인인 엔트로피, 잔인하고 준엄한 여왕.
스타니스와프 렘, 「사이버리아드」中
"아빠, 몸이 또 아파와요."
아이는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과 그 고통을 참으려 꽉 깨문 치아 탓에 떨리는 턱 그리고
눈가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은 그것이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괜찮니?" 아버지는 그렇게 묻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 고통이 이미 너무도 여러번 반복된 것이며 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요 난. 죄송해요 걱정시켜드리면 안 되는 건데."
아이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제법 어른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다, 얘야. 아프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아빠가 안아줄테니."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아이 쪽으로
다가가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의 작은 몸은 끝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아니, 몸이 약했다기 보다는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 고통받고 있었다. 아이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오한과 발작을 반복하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의사들은
그 이유를 몰랐다. 증세는 있되 원인은 없었다.
친척들은 어머니를 죽이며 태어난 댓가라며 수근거렸다.
담당 의사는 어차피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아이는 살아남았다. 언제나 보기에도 안쓰런 고통 속에
살아갔지만 단 한 번도 죽음의 문턱 가까이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이가 언제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아이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태어난 직후였지만 그 이후로도 고통이 완전히 가라앉은
적은 없었다. 이 아이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보다는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계속 살아가게 둬도 될까 의문이
들만큼 반복됐다.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야 했기에 친척에게 아이를 맡겼지만
이내 곧 돌려보내지곤 했다. 끊임없이 울면서 숨을 헐떨이곤
하는 아이를 맡아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택해 그 일을 하기로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 때문에 멀쩡한
직장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라났고, 고통을 참는 법을 배웠다.
아니, 고통 속에서도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지만 고통이 심해질 때는 차마 보고 있지 못할 정도로
바들바들 떨며 숨을 헐떡거렸다.
아버지는 아이가 그럴 때마다 꼭 안아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세상엔 왜 고통이 있는 거죠?"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밤 언제나처럼 아이를
겨우 재우고는 방에 들어가 밤새 울음을 삼켰다.
그런 삶이었다. 하나는 고통을 삼켰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그러나 죽음의 축복도 없었고 삶 또한 없었다.
아버지와 아이는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평소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동공이 풀려갔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아이를 품에 꼭 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속보로 중동지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자막이 나왔다.
아버지는 지친 눈길로 그 자막을 읽어내려갔다.
'이스라엘 가자 지구 재침공, 민간인 1000명 사망'
눈은 글자를 읽고 있었지만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이의 헐떡임과 몸의 떨림이 그의 사고를 정지시킨 듯 했다.
'언제까지나 너를 이렇게 안아 줄 수는 없잖니...'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너무도 흔해진 눈물의
무게를 눈두덩 위로 느꼈다.
그 순간 아이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음을 터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격하게 몸을 앞뒤로 흔들며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눈과 귀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
남아있지 못할만큼 괴로워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아이의 안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이만큼이나 격하게 흐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무력감과 피로감, 자신과 아이의 삶에 대한 저주를
담아 말을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보다 더 고통스럽게 울었다.
하지만 아이보다 빨리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가, 언젠가 세상엔 왜 고통이란 것이 있냐고 물었지?
아버진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가 없구나.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어. 너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떠안고 있다고."
아버지는 입술을 한 번 잘근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네 고통은 네 탓이 아니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의
탓인지도 말해줄 수는 없구나."
"하지만 내 탓이 아니라면 왜 나만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 거죠?"
아이는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괴로워. 물론 네가 아파하는 만큼은 아니겠지.
아버지가 조금 전에 네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떠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지? 그건 네 고통이 세상 모든 고통의 합만큼이라는
의미로만 말한 건 아니야. 너는 정말로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아픔이 전해지는 만큼 괴로워하는 것 같구나.
아버지는 방금 전 그걸 깨달았어.
그러니까 생각해보렴. 네게 더 큰 고통이 주어질 때마다 세상
다른 곳에서 누군가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고 있거나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워하고 있다고.
그러니가 네가 아무리 괴롭다 해도 너는 지면 안 된다고."
아이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아이를 더 세게 끌어 안았다.
그 순간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차올랐다.
'어째서 나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는 걸까.
어쩌자고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이 아이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받는 것이라 해도
이 아이에게 그럴 의무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또 그 누가 이 아이에게 고통을 나누도록 할 권리를 갖고 있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면 이 아이의 고통 또한 정녕 사라질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없애기 위해 삶을 바치겠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테지. 변한다 해도 너무 늦을테지.'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아이가 겨우 들릴듯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그러면 세상 그 누구도 아프지 않다면 내 고통도 사라지는 건가요?"
"응, 그래. 그렇단다, 아가."
아버지는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아이에게 결코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정말 계속 살아가도 좋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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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zl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