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초 레제트랑제에 썼던 글.
약속드린 대로 글을 씁니다. 불문이반 06학번 게시판에 어마어마한 일을 벌인지라 정신이
몽롱해서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잠도 안 오는 고로 짧게나마
써볼까 합니다.
최근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밍기적밍기적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징주의 수업 시간에는 보들레르에 대한 비평을 몇 개 읽었고요.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공감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고찰이란 측면에 있어서 제 평소에 생각과 비슷했거든요.
그렇지만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낀 쪽은 보들레르입니다.
시쳇말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의식하고 있는 그 순간의 주체가
느끼는 괴리감 같은 거요. 개인적으로 제 자신이 시인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시를 잘 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괴리감에 언제나 시달리고 있고
불안해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것을 자꾸 글로 토로하게 된다는 점에서요.
그렇지만 제가 만약 제대로 된 작품을 쓴다면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매일 일기 비슷하게 그런 말들을 수도 없이 흘려왔습니다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 그게 아니라면 내가 여태 생각한 인간과 사회의 모습,
내가 그리는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물론 보들레르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안을 주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보들레르가 싫다고 하지 보들레르의 작품이
싫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보들레르에게서 자꾸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위험한 발언이네요. 보들레르에게 누가 된다거나 마음 상하셨다면 죄송 -_-)
나 자신의 안으로 자꾸 미끄러져 들어가며
정말 중요한 것들, 생존 자체에 힘겨움을 느끼는 사람들, 내 미력한 힘이나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꾸 잊게 됩니다. 외면하게 됩니다. 대신에 나 자신만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런 제가 싫거든요. 그런 제가 밉거든요. 그런 제가 부끄럽거든요.
그런데 보들레르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존재의 고통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제 자신의 한심함을 정당화시켜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요.
도스토예프스키와 보들레르 중 어느 쪽이 인간적으로 더 나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는 어떤 고민의 흔적을 읽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느끼는 것들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고민이 아닌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지 않던가'하는 고민이요.
그래서 저는 보들레르라는 한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개인적 공감대가 도스토프스키에 대한
공감대보다 큼에도 불구하고 후자 쪽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똑같이 자기 자신의 고통에서 머물러 버린 보들레르가 미워졌습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족을 덧붙이면 누가 더 훌륭한 문호인가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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