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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더럽혀진 슬픔

"괜찮니? 지난 번 통화했을 때 너 많이 이상한 것 같았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찬찬히 생각해보니 지난 한 달간 나는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얼마나 이성적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몇 번인가 공격적이었던 때야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알지만
그 이외의 순간들마저도 느슨해지는 나사를 조이는 대신
그 느슨해진 상태가 정상이었다고 나 홀로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 자기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인식의 한계에 대처하는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을 감고 머리 속에서 모든 이미지와 말들을, 가능한 만큼
생각과 마음을 지워내는 것이다. 충분히 지워낸 후 평화 속에서
천천히 재유입되는 이미지와 말들은 비교적 순수하고 진실하다.

지난 한 달 동안 사실은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음을 생각할 때 나는 결코 차분했다거나 정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완전히 나 자신을 잃었고, 나 자신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지금도 대체 어떠한
상태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심지어는 내가 깨달았다고 생각한 삶의 진리, 관계의 진리,
삶과 관계 속에서 내가 실천해야만 하고 할 수 있다 믿은 일들이
지금은 머리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해 간절히 행하고 싶다고 확신한
순간에 그 기회가 박탈됨으로써 나는 모든 깨달음마저 함께 지워낸 듯 하다.

지금 마음의 평화도 어쩌면 또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대 마음보다 내 마음이 평화로운 것은
나는 마음을 다 했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

세워놨던 인생의 계획표가 마구 뒤틀리고 뒤로 밀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다시 정렬되어 있기 마련이다.
슬프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삶 자체의 특성에는 선도 악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우리의 몫일 뿐일테고.

더럽혀진 슬픔.
나사를 바짝 조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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