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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바다가 지구를 삼키던 날

어제 나는 또 거짓말을 했다.
그것만 빼고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

보름 후에 만월이 되면 해수면이 상승해 모든 것을 덮쳐 버릴 거야.
지구 상에 그 무엇도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 돼.

그는 킥킥 거리며 내게 말했지만 나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우스운 거짓말에 속지 않아.
나는 벌써 스물 여섯이야. 물론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아무튼 그따위 거짓말에는 속지 않아.

그러자 그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소원을 빌어. 대보름이잖아. 가장 큰 달에 소원을 비는 거다.
내 장담하지. 그 어떠한 소원이라도 이루어 질 거야.
네가 믿지 않는다 해도 밑져야 본전이잖아.
소원을 빌어. 네가 가장 바라는 것으로.
네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욕망하고 있는 그 말을 뱉어.
가장 더럽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끔찍한 것조차도 이루어 질 거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그것만 빼고는)

라 말하고 그를 무시한 채 재빨리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로 기분이 계속 찝찝했다.
바다가 제멋대로 지구 전체를 삼키는 일 따위를 두려워해서는 아니다.
다만 다만 그의 마지막 말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한 욕망의 덮개를 벗겨버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을 뿐이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그것만 빼고는.

그래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아주 역겨운 것들을 바라고 있어.
그리고 가끔은 뻔뻔하게 그 말들을 내뱉지.
내가 가장 바라는 것. 그건 나도 뭔지 몰라. 단지 그게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저열한 것이란 것만을 알고 있어.

나는 지나가던 한 소년에게 말을 건넨다.
그처럼 킥킥대며 말한다. 보름 후에 소원을 빌라고. 킥킥.
그 소원이 어떠한 것이든 이루어 질 거야. 킥킥.
그래, 정말로 이루어질 거야. 킥킥.
소년이 대답한다.

그따위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잠시 망설이다 말을 잇는다.
바다가 온 지구를 삼켜버렸으면 좋겠어.

나는 그것 때문에 망설였는데 우습게도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과연 그걸로 끝일까?...
나는 정말로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그것만 빼고는.
나는 언제나 수험생 주제에 출제자처럼 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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