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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fictionary #0

네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 네가 쓴 글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그 작은 입으로 조잘조잘 쏟아내던 말들 속에서는 결코 발견한 적 없는
어떤 세세한 부분들이 가지는 매력과, 조금은 거친 말투 속에 숨겨뒀던
섬세함이 글자들 사이사이에 놓여 있어서 마치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너를 잘은 모르지만.

나는 꽤 많은 말들을 쏟아내곤 한다. 그러고도 아직 할 말이 많아서
이렇게 또 글로 남은 말들을 풀어낸다. 그렇지만 네 말보다 네 글이
나를 더 즐겁게 하는 것처럼 나 또한 내가 하는 말보다 내가 쓰는 글을
더 좋아한다. 내가 쓰는 글이 나를 더 잘 말해주니까, 그리고 내가 했어야
했던 말들을, 내가 하고팠던 말들을 그리고 하지 못하는 말들을
할 수 있으니까.

사르트르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어렵게 쓸 수 밖에 없었는지 투덜대고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며 그녀의 내밀한 고백은 정말 숨기고픈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방식일 뿐이라고 의심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며
가슴 가득 차오르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회의에 숨가빠 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며 그의 암울한 인간관에 공감하고
또 쓰라려 하지만,
어슐러 르 귄의 소설 속에 빠져서 그녀의 담담한 문체와 함께 명상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읽으며 그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부드러운 눈물로 대답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쓰고픈 글은 그런 위대한 글들이 아니라
한 사람을 울리고 웃게할 수 있는 그런 글이다.
감정을 차갑게 식히고 침묵의 어둠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그 본질에 이르는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어찌할 수 없이
다시 또 피어오르는 작은 불빛에 비쳐지는 모든 장면들이
놓여 있는 그런 글이다.

물론 글 속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한참을 바라본 그 순간이 착각이 아니었다면.


222	여러분 안녕 !!!!!	Giverny	2007/10/01	448

221	바다가 지구를 삼키던 날	Giverny	2007/02/18	448

220	여전히 떨림	Giverny	2011/03/03	446

	fictionary #0	Giverny	2010/04/06	446

218	쓰잘데 없는 이야기들	Giverny	2008/12/07	444

217	무겁다	Giverny	2008/12/12	443

216	# 3	Giverny	2008/11/16	443

215	금구름 [1]	Giverny	2008/11/03	442

214	잊지 않기를	Giverny	2007/03/06	442

213	절망 그 이상-_- [1]	Giverny	2007/02/17	442

212	잠시	Giverny	2007/11/17	441

211	잊혀진다는 것	Giverny	2007/04/20	440

210	오랜만이에요	Giverny	2007/02/13	440

209	우리들은 자란다 [2]	Giverny	2008/05/19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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