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내가 그 악마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실험실에 틀어박혀 살라만더의 꼬리나
그리폰의 눈물이나 도깨비의 뿔 따위를 섞어서 만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는 그런 것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고
시행착오 따위는 귀찮아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렇지만 내가 그 악마를 만들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못된
성격 탓입니다. 나의 무책임함, 게으름 따위가 그 악마를 만들었던 거지요.
지하철을 타고 오며 나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글쎄요, 울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이제와서
무책임하게 울 수는 없으니까요. 적어도 지지는 말자, 뭐 그런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지하철 역을 나와서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왔습니다.
집에 거의 다 와서는 오한이 났고요. 나는 정말이지 두려웠습니다.
그 언젠가 내 삶이 끝날까 두려워서 온몸의 털이 쭈삣 설 때의
느낌과는 비슷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그 순간 삶이란 것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내가 만들어낸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악마와 함께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그 사실이
나를 너무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이제 그 악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나 자신이란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최초의 징후가 나타났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그 악마가 자신을 만들어 낸 나에게
복수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악마가 정녕
악마라고 인정하는 것이 내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나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나는 그 순간을 무사히
넘겼고 '그건 악마가 아닙니다, 족제비나 멧돼지 따위겠지요'라고
뻔뻔한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까지 나아갔습니다.
사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악마가 결코 악마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믿게 만드는 지경까지 갔던 겁니다.
그 악마가 앞으로 얼마나 터무니 없는 짓들을 할지,
내가 그 때문에 얼마나 두려워할지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나는 가까스로 평화를 맞았습니다. 악마와는 전혀 무관한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모든 과거를 잊고 부정하고 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악마는 나에 대한 복수를 잊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낙관적이었던 거지요. 누가 알았겠습니까,
매사에 이토록이나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나란 사람이
그렇게 쉽게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줄을.
그 악마가 복수를 잊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수란 증오가 사라졌을 때 이뤄지게 마련입니다.
그 악마는 내게 지옥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내가 상상하기를 그쳤던,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지옥의 문을요.
지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사실 그 문이 열린 것은 조금 지난 일이었지만
나는 미처 몰랐던 거지요.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까지 그 지옥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모든 비극의 최초의 원인이 나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비극이란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들은 지옥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들이 지옥의 문을 넘어선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악마를 찬양하는 사람들조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그런 지옥의 광경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그 악마의 모습이나 행위도 아니었습니다.
그 악마가 태어난 최초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고,
지금 이 지옥은 그 악마가 만들어냈다는 사실도 아니었습니다.
악마는 그저 지옥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저 지옥을 보여줄 뿐입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그 지옥에서 가장 버텨내지 못할 사람은
나란 사실이며, 그 지옥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가장 악랄한,
악마보다도 더 악마다운 그런 마지막 광기를 내뿜게 되는 것은
나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악마가 보여준 지옥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바둥대고 있습니다.
악마의 복수는 성공했습니다. 그가 의도하지 않은 그 복수는
그 자신도 모르는 새에 너무도 완전히 이뤄졌습니다.
이제 내가 싸우는 것은 지옥의 한 가운데에서 지고한 악의
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나를 막기 위함입니다.
나는 두렵습니다.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 삶을 살아가는 이상 무언가 저지르게 될 것이 분명한
나를 알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너무도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삶은 나의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되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나란 사람, 김현우란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나처럼 거짓과 진실을 섞어 말하지도 않았고,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을 혼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지금의 내 이야기입니다.
나는 인간이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끔찍한 사실을 캐내었습니다.
나는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어른으로 여기는 순간 이미
지옥으로 최초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부끄러워하고 있나요?
나는 어른인가요?
아니면 그렇게 믿고 있었던 가요?
나는 정말로 눈물을 글썽였고, 온몸을 떨었고, 두려웠습니다.
죽음보다 삶이 더한 두려움을 줄 때 그 누구에게 그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그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빠뜨리지 않고 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일 아침 약간의 몽롱함에서,
약간의 취기에서 깨어나면 나는 지금의 이 두려움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잊지 않고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오늘 깨달은 것 중 유일하게 한가지 다행인 것은
그 어떤 지옥이 열려도 그보다 더한 지옥이 우릴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갈 만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은 그 정도 뿐인가 봅니다.
* Givern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8-23 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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