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정치적 소신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 편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까지 여기서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이 글은 정치적 소신에 대한 글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야겠습니다. 저는 길수가 올린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논지의 중심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을 뿐이지요.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들은 글의 마지막까지 읽으신 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글을 남기기 전 다소 망설였던 이유는 아직 학교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졸업생 신분인 제가 글을 남기기에 이 게시판이 적당한 곳인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은 그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음을 고백합니다만 그것은 글의 내용과는 무관함 또한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글을 남기는 곳 외에 다시 정치적 신념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 글을 남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여전히 글을 남기는 것이 옳은 일인지,만약 제 글에 반박 글이 올라온다면 과연 제가 계속 논박을 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평택 미군 기지 이전을 찬성하는 쪽이지만 그쪽으로 의견을 개진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며 글을 쓰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 아닌 탓입니다.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게으름으로 인해 일어날지 모르는 일들에 대비해 장자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 하나로 변명을 대신할까 합니다(기억에 의한 것이므로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장자의 가장 친구인 혜자는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논쟁을 하고나서 혼자 흥분한 채 집에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했더니 자신이 도대체 왜 논쟁을 했는지, 왜 그렇게 이기려했는지 모르겠더랍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혜자는 논쟁에 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이유로 그 어떠한 논쟁에도 끼지 않는 편입니다만 스스로도 다소 무책임하다 생각하는 변명은 여기까지이고 서설이 너무도 길었음에 사과드리며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얼마 전 제 개인 홈페이지에 남겼던 글을 적당히 수정하고 약간 덧붙인 글임을 말씀드립니다(실선 사이 부분은 그래서 반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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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진보가 어떤 권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진보적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혹은 운동권의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뭔가 바보 취급 받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1학년 때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던 점 중 하나는 그 바보 취급이 두려워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과장을 맡으며 거부했던 것이 그런 것이었는데 현실은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내가 과장을 하며 했던 일은 단 한가지였다. 학생회 차원에서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 그것 단 하나다. 어찌 보면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아무 것도 안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문제들에 관해 나는 막연한 생각 뿐 그 어떠한 실천도 하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다.
내가 몽테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모든 수모를 참아내며 끝까지 관조적 자세를 취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관조적 자세의 끝에, 정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임했음에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사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사상을 접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옳은 길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관조하는 능력, 기다리는 능력을 길러주고 행동하려는 의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외부로부터 수많은 - 방향성이 너무도 분명한 - 의식 혹은 의견들을 강요받는다. 물론 우리가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해야 하는 최선은 그런 의견들이 누군가에게 생소한 것일 때, 그런 의견들을 처음 듣는 것일 때 그것을 하나의 진리나 도그마가 아닌 단순히 하나의 의견으로서 제시하고 또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신입생들에게 어떤 정치적 판단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떤 능력이 없거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급변한 주변 환경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권력이 영향을 미칠 때 그것이 어떠한 편향성을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두려운 일이기에 나는 신입생들이 집회에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대학 내의 진보가 권력으로 작용하면서 신입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접하게 되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너는 여태까지 보수적이고 기득권적 시각에 매몰되어 있던 것이다. 너는 이제 대학생이니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옳다." 그렇지만 나라면 이렇게 얘기해줄 것이다. "너는 여태까지 보수적이고 기득권적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보수적인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의 관점일 뿐이니 너는 타인의 삶에 주요한 문제들에 관심을 잃지 말고 어느 쪽이 더 옳은지 판단해라. 타인의 판단을 쫓지 마라. 네가 여태 편향된 교육을 받았다면 네가 지금부터 접하는 말들도 편향된 것일 수 있음을 경계하라."
그렇지만 매번 신입생들이 학기 초부터 그렇게 집회에 따라 나가고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매몰된다. 그게 기존의 편향된 시각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은 아닌지, 새로운 환경에의 천착은 아닌지, 무비판적 경외심에 의한 것인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주체적 판단을 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하면서도 객관적으로 결론을 내리려 하는 똑똑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본 그런 사람들은 극히 소수이다. 그것이 개개인의 무능함 탓이라 볼 수는 없다. 단지 그러지 않았던 소수, 객관적 시각을 잃지 않았던 그 소수가 존경받을 일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하는 일이 가능한지 나도 잘 모르겠다. 현재 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은 그런 반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는 것은 분명 무책임한 일이다. 좋든 싫든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포기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어떠한 변명도 자리할 수 없다. 그러나 진보가 진정 보수보다 인간의 자유를 중시하고 개인과 사회의 평등한 권리를 꿈꾸고 있다면(동의하지 않지만...) 더더욱 모두가 객관적 시각을 가질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나하나의 행동에 선동의 의도가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행동이 어떠한 힘을 갖는다면, 그것이 공정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렇고, 그들의 이야기를 저렇다고. 어느 한쪽만 이야기하지 말고 전부를 이야기하라. 물론 자기 자신의 이야기 외에 자신이 반대하는 의견까지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논쟁의 자리가 아닌 이상은, 불특정 다수 속에 특정 다수가 섞여 있는 이상은 그런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말하라. <판단은 너의 것, 그러나 그것은 관조 끝에 내리는 주체적 작용일 것, 어떤 흐름의 일부가 되거나 기존의 자신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어서는 안 된다>고.
대선 직후 동기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왜 이회창을 찍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걸까." 자신의 정치적 견해조차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 그것 자체가 폭력임을 왜 알지 못하는가. 그런 폭력을 자행하면서 어찌 진보를 말하는가. 그건 어쩌면 진보의 태생적 한계이기에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범주에 놓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진보'라면 그 태생적 한계를 최소한 인지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진심으로 고민하고 부끄러워해야하지 않는가.
(‘태생적 한계’란 표현에 어떠한 비판의 의도도 없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에 대한 해명은 바로 아래서 하도록 하겠다. 용어 선택이 불쾌감을 준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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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전에 썼던 글에서 약간의 수정만 가했습니다. 이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몇 가지 해명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수는 쉽고 진보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 말은 아니고 전에 우연히 읽은 글의 제목이었습니다만 굉장히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대학 내에서 보수의 목소리가 작은 까닭은 대부분의 경우 무관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실히 노력하지 않아도 대체로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는 쉽고 진보는 어렵습니다. 진보를 믿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갖고 거기에 따라 직접 몸과 마음을 거기에 쏟는 선후배들을 저는 존중합니다. 저와 정치적 견해가 정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진심으로 그 마음가짐과 실천력을 소중히 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소중히 하고 있는 그 마음이 서글프게 느껴질 정도로 그것이 제게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은 것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수는 쉽고 진보는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이미 입학할 때부터 보이지 않는 폭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입학했을 때만해도 선배들이 집회를 나가는 것이 비교적 자주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제 정치관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집회의 목적들에 찬성하지 않았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제가 제 자신의 선택에 의해 나가지 않았음에도 집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부끄럽게 여겨지는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술자리에서도 선배들이 집회에 대한 이야기,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감히 반대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비겁했고 게을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비겁했고 게을렀기에 그때 제가 느낀 기분을, 제 동기가 대선이 끝나고 감히 누구를 찍었는지 말도 할 수 없었을 때 느낀 울분을 후배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길수의 글이, 평택 저항 지지의 글들이 어떤 폭력성을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분노하고 있음을,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신념에 따른 훌륭한 의도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려하고 있고, 두렵고, 가끔은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제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이 평택 저항 지지자들에 대한 직접적 반감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입학하기 전부터 계속 전해져 온 그 어떠한 폭력성, 그것에 대한 반감일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평택 저항 반대 글을 올렸더라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후배의 글에 대한 논리적, 정치적 반박이 아니라, 그의 글을 계기로 하여 그가 의도했을 리 없는 아주 오래된 다른 무언가에 대한 비판을 할 수 밖에 없음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노파심에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가 누군가의 판단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단지 어떤 편향된 분위기가 존재해 왔으며 그 편향된 분위기 내에서 전해지는 의견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폭력일 수 있고, 그런 이유로 적어도 신입생 게시판에 정치적, 개인적 신념에 따른 글은 지양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단지 한 학기만이라도 중립의 위치에서 바라볼 여유가 있다면 좋을텐데요.
저는 학교는 6년째 다니는 지금도 여전히 과반방에서 누군가 정치적 이야기를 할 때 그냥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치적 신념에 대한 반박으로 개인적 관계들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정치적 신념의 차이가 개인적 관계에 있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다른 누군가도 조금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주시는 것이 옳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글이 어떠한 공감도 일으키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와 반대편의 사람들의 신념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제게 그런 책임감이 한참 부족할지라도 저의 신념 또한 존중받고 싶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임을 알기에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화가 났을 뿐입니다.
결론까지 이르는데 상당히 오래 걸린 듯하네요. 그리고 그 결론을 제가 명확히 드러냈는지도 자신할 수 없네요.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순한 정치적 의견의 개진도 어떤 환경 하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고, 특히 그것이 선배들의 말 한마디가 직접적으로 와 닿을 신입생들에게로 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웬만해서는 퇴고하지 않습니다. 게으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이번에는 몇 번씩 다시 읽고 고쳐 쓰게 되는군요. 아마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제가 여러 번 고쳐 썼음에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특히 신입생 여러분에게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지금도 걱정이 됩니다. 여러분을 과소평가했다고 느끼지나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말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시다면 제 의도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제 글 쓰는 능력이 미진한 탓이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결론에 문제가 있다면 겸허히 인정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특히‘신입생에게’라는 부분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인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제가 근본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성의 문제니까요. 그러나 이 글이 갖는 오류나, 이 글이 만들어내는 거부감 이전에 최소한 제가 말하는 어떤 위험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이 글의 궁극적 목적이라 하겠습니다.
몇 번씩 고치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고민했습니다만, 혼자 다시 읽으면 빠뜨리는 부분이 있을까 읽어주기를 부탁했던 친구가 ‘이렇게 말해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해주어 결국 이렇게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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