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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속이 노란 고구마

컴퓨터 모니터 뒷쪽 창가에 '강화 속노랑 고구마' 상자가 보인다.
이름 지은 사람이 뻔뻔한 사람이 아니라면 속이 노랗겠지 아마.
어머니는 강화도까지 가서 한 상자나 사오셨는데 내가 잘 먹지
않는다고 투덜대신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이 많다.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스물 아홉 먹도록 아들의 식성을 잘 모르신다.
그래도 속이 노란 고구마를 보고선 가족들을 생각해서 사오신
어머니께 불효자가 투덜거릴 자격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어머니가 사오신 속이 노란 고구마 속에는 내가 담겨 있다.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속이 노란 고구마 속에 너를 담는다.
먹지 못하는 메추리알 속에도 네가 담겨 있었고,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이나 읽었던 소설 속에도 네가 담겨 있었으며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가끔 연습하는 기타 선율 속에도 네가 있었다.

내가 배우는 모든 것이 너를 위한 것이고
내가 짓는 모든 이야기가 너에 대한 이야기고
내가 부르는 모든 노래들에 담긴 그 어떤 감정도 너에 대한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말 속에 네가 있다.
모든 명사는 아직 알지 못하는 네 이름을 대신함이고
모든 형용사는 아직 보지 못한 네 얼굴을 표현하기 위함이고
모든 부사는 네가 존재하는 미지의 시간과 공간을 위해 말해진다.
그러나 너는 모든 말과 말 사이에 놓여있는 나의 호흡 그 자체라서
할 말을 찾지 못했을 때 새어나오는 한숨 속에서만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속이 노란 고구마 속에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 속에도
그리고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단어 하나하나에도

네가 있을 것 같다.
모든 장소에 모든 시간 속에, 모든 감정과 모든 기억과 꿈과
모든 존재 속에 그리고 모든 말 속에.
그러나 너는
내가 있을 수 없는 곳에, 내가 갈 수 없는 시간 속에,
내가 느껴본 적 없는 감정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언젠가에,
내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꿈 속에.
그리고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속에
내가 결코 할 수 없고, 뱉은 적도 없는 모든 말 속에 있다.
그러니까 더 많은 것을 기억할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 갈수록
더 많이 꿈꾸고, 더 많은 말을 내뱉을 수록 너는 옅어져만 간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오직 침묵과 부재 속에만 존재하는 너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글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어와 단어 속에 그 존재를
묶어둘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기를 언제나 바랐다. 그래서 이렇게 또 적는다.

Nancy	That's cleared my thoughts. Thanks for cnotributnig.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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