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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중학교 2학년 7반 교사 강기배 씨는 퇴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다섯 시를 조금 넘은 시간 교무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K씨는 검토해야
할 과제물을 가방에 넣던 중이었다. 그는 마지막 과제물 더미를
가방에 쑤셔넣으며 요즘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강기배 씨는 사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마치 아이처럼
설레어 하는 자신의 모습에 종종 웃음이 나곤 했다. 그리고 가끔은
어린 아이 같이 굴기도 했다. 학교 계단을 두 칸 씩 뛰어다니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자습시켜놓고 혼자 낙서를 하기도 했다.
그가 주로 하는 낙서는 자신과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한참 공들여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그 그림을 보면서
혼자 킥킥대며 웃어서 학생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는 했다.
사실 그는 너무 많이 웃곤 했다. 강의를 하다가 혼자 킥킥대며 웃기도
했고 잘못한 학생을 혼내다가도 웃었다. 그리고 가끔은 유치한 장난,
그러니까 그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K 중학교 학생들조차 하지 않을
그런 유치한 장난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과제물 더미를 넣고 가방을 잠근 후 그가 또 킥킥대며
생각한 것은 그런 유치한 장난들에 대해서였다. 이제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조금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그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문소리가 나며 누군가 교무실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강기배 씨 혼자 있던 교무실로 들어온 것은 그의 반 학생인
장기훈이었다. 기훈은 키가 보통보다 약간 작고 말수가 없는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교우 관계는 좋은 편이었으며 머리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라 학급의 반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재밌는 몸짓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도 있었으므로
담임인 강기배와는 무척 친근한 사이였다.
기배가 돌아보자 기훈은 머리를 살짝 숙여 목례를 하고는 바로
기배에게로 다가왔다. 기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기훈은
바로 말을 꺼냈다.
"선생님 지금 퇴근하시나요?"
"그래, 지금 퇴근하려고. 오늘은 일이 좀 많아서 늦게 퇴근하게 됐다.
그런데 무슨 일이니?"
"아, 퇴근하시려는데 죄송합니다. 그럼 내일 말씀드릴게요."
"오래 걸리는 거 아니면 지금 말해도 괜찮아. 요즘 내 아내가
출산일이 다가와서 내가 정신이 없어. 그래서 내일은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말해보렴."
"아, 선생님 저희 동네 사신다는 말씀 들었는데 혹시 지금 집으로
바로 가시면 같이 가면서 말씀드려도 좋을 것 같은데..."
"아, 나는 지금 병원으로 바로 갈거야."
"그럼 지금 여기서 말씀 드릴게요. 말씀드리는 것은 오래 안 걸리겠지만
조금 찾아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서 번거로우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부탁드립니다."
"그래, 말해봐라. 내가 뭘 도와줄까?"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던 일인데요. 학교에서 집에 가던 길이었어요.
저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 걷고 있었는데 하늘이 너무 예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어요. 바람도 시원하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혼자 너무 행복해 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제 머리를 때렸어요.
근데 그게 너무 세게 때려서 바로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리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를 돌아보았는데 누군가 골목을 꺾어
달려가는 것을 보았어요. 그렇지만 정말이지 눈 앞에 별이 반짝거려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고 겉옷 소매 색깔이 검은 색인 것만 봤습니다."
"음...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 거지?"
"소매 색이 검었던 것으로 봐서 우리 학교 학생인 것 같아요.
저한테 장난을 친 것으로 봐서는 저랑 어느 정도 아는 사이인 것도
같고,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제 이름을 크게 부르며
때렸던 것 같습니다. 마치 친구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그리고 나서 월요일에 학교에 오면 장난친 사람이 저에게
자신이었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결국 제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화가 나서 그 녀석이 누군지 꼭 알아내어
따지고 싶어졌어요."
"그렇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잖니."
"머리를 친 각도를 볼 때 키가 큰 녀석이었어요."
"그래, 어느 정도 컸다고 생각되니?"
"음..글쎄요..선생님 키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나 정도 되는 키의 학생 명단인 건가?
네 친구들 중에서 키가 나와 비슷한 녀석들을 찾아다니면 되잖아."
"그게 제가 키가 작은 편이라 확실하지가 않아요. 그냥 제 추측이니까요.
제 생각에는 키는 선생님 정도에 제 이름을 알고 - 모두들 저한테
장난치는 것을 재밌어 하니까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이 후보긴 합니다 -
저희 동네에 사는 학생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한 명으로
압축되지는 않겠지만 그 중에서 장난끼가 조금 심한 녀석을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정말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 치고는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요."
"아, 그럼 2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한다 이거군. 그건 너무 번거롭잖니.
일단 너랑 알고 지내는 녀석들 명단을 적어서 반별로 정리해 오면
내가 할 수 있는만큼 도움을 주마. 그 정도면 괜찮겠지?"
"네, 그게 더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뭐 내일 바로는 어렵겠고 며칠 걸릴 거다. 말했다시피 나도 정신이 없어서."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 요즘 기분이 너무 좋으신 것 같아요."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
"반 애들 전체가 선생님 요즘 너무 이상하시다고 그러던 걸요.
수업 시간에도 혼자 계속 웃으시고, 낙서하시는 것 훔쳐 본 아이들도
몇 있고요."
"그래, 너희도 결혼해 보면 이 기분 알 거다 하하. 아무튼 조금
자중해야겠구나."
"뭐 보기 좋습니다. 제가 선생님 퇴근 시간을 너무 늦춰버렸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잘 들어가고 내일 보도록 하자. 아, 내일 아침 주번은 누구지?"
"김정선이요."
"그래 알았다."
기훈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 교무실을 나갔다.
강기배 씨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가 책상 위에 다시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내의 출산이 아니라 조금 전에 기훈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내가 요즘 너무 들떠있긴 들떠 있었나 보군. 그래, 많이 심했어.'
강기배 씨는 자신을 책망하여 다시 가방을 집어 들고 교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다짐했다. 당분간은 지난 주 금요일에 입었던 상의,
이 학교 교복과 비슷한 색의 그 상의를 입지 않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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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장기훈을 때렸는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