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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rny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insane

나름 재밌는데도 불구하고 읽어나가는 것이 너무나 버거운
'마의 산'도 이제 거의 마지막 부분이다.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것과 닮았다고 믿었는데
중반부를 훌쩍 넘기고 보니 말많은 세템브리니와 훨씬 닮은 것 같다.
하나의 사상 혹은 생각을 위해 끝없이 말하고 끝없이 궤변을 부리고
결국 자신 안의 모순은 돌아보지 못한 채 끝없이 설파하고
교육자가 되는 세템브리니의 눈쌀찌푸리게 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지루한 토론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건만
페페르코른이란 인물이 느닷없이 등장하여 두 인물을 동시에
패배자로 만든다. 재력과 외모에서 풍기는 위엄 그리고 그 모두를
기반으로 한 제왕적 태도로 인해 언제나 군림하는 존재인
페페르코른은 난데없이 등장하여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를
그리고 나를 순식간에 패배자로 만들었다.

내가 던진 말과 내가 적은 글과 내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유치하고 얼마나 간단하게 패배할 수 있는 것인지
깨닫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내가 지금 정말 정상인 걸까.
페페르코른이 내게 던진 패배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차갑게 식은 감정은 대신 더욱 단단해졌으며
고의로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나의 이성에 준엄히 경고한 것이
무참히 무효화 되어 이를 악물고 달아났던 지난 한 주보다
더욱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는 사실.
공부를 해도 책을 읽어도 결국은 머리 속에 한가지 생각
(그러나 각기 다른 결론과 각기 다른 이유가 동시에 존재하는)만이
존재하여 나는 내가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처럼 감정이 폭발하고 참아내지 못해 또 공격적인 말들이
생각났더라면, 아니면 한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의 마음이 평화와
무조건적 애정으로 가득찼더라면 그저 내 이성의 무력화만을
의심했을테지만 지금의 나는 감정없이 통제불능의 이성들 -
수없이 많은 이성들 - 속에서 미쳐가는 것이 분명하다.

놀랐다, 사람이 이렇게 서서히 미쳐갈 수도 있구나 하고.


110	# 1	Giverny	2008/11/16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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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ane	Giverny	2008/10/20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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