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던 온다 리쿠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분위기에 대한 선호에 따라 호오가 갈리고 평이 갈리는 작가였던 지라
'뭔가 문체가 엄청날 거다(혹은 터무니 없을 거다)',
'묘사가 끝도 없이 이어질 거다(난 묘사 길게 하는 글은 싫다)'라는
불안감을 안은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재밌다. 몰입도도 좋고, 문장도 깔끔하다.
총 4부로 이뤄진 이 소설은 각 부가 100 페이지 이내의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는 단편으로 되어 있다. 각 부는 중층적으로 얽히고
얽혀 재미를 더해 준다.
책의 재미는 참으로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그 재미만큼의 난감함도
여러군데서 발견된다.
일단 각 부의 편차가 너무 크다. 1,2,3 부의 무난함에 비해서
4부는 질이 너무나 떨어진다. 작가가 끝없이 직접 개입하며
'4부를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최초의 구상대로 4부를
맞추기 위해서 그런 것이든 나름의 새로운 방식의 시도든
독자를 상대로 그런 장난을 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
아니, 장난을 치더라도 적어도 독자를 실망시키는 장난은
곤란하다. 4부를 읽는 내내 나는 실망하면서 '쓸 거 없으면
그만 하지..'라는 생각을 끝없이 했다.
사실 각각의 부를 독립적으로 읽으면 B급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의 4부는 C급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재밌게 읽히는 것은 전체에 일관하는 동시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용되는 공통의 인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자체의 제목과 같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미지의 소설이
네 개의 부에 계속 등장한다. 독자는 이런 중층의 구조를 맞이하며
예상하는 동시에 해독을 해야하는데 상위 구조의 수수께끼는
비교적 단순한 하위 구조보다 복잡한 동시에 끊임없이 변형된다.
읽으면서 내내 떠올린 작품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게 읽었던 이 작품은(역시 영미권 작가는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작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반면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일단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은 재밌었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을 쓰여진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온다 리쿠는 모든 것을
부풀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부풀린 내용들을 다시 부풀려
새로운 장편들로 바꿔내게 된다. 이쯤 되면 온다 리쿠 월드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이것은 작품 외적 이야기지만 이 소설의 각 부를
장편으로 다시 썼다고 한다..매번 이런 식으로 쓴다던데;;).
작가는 4부에서 '잘 된 이야기가 주는 쾌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소설은 결코 '잘 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뭔가 부족하고 당황스럽고 불쾌한 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런 난감한 점들이 중층의 구조로 인해
무사히 덮이고, 다시 그 중층의 구조가 어떻게 변형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준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B급의 줄들을 연결해 만든 특B급 그물이다.
그 그물의 매력은 참으로 놀랍고 즐겁다. 온다 리쿠에 대한 호오는
왜 그렇게 갈리는가...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물 이야기를
해주겠다. 그 그물에 걸리느냐 아니냐가 문제라고.
그런데 참으로 재밌는 것이 나는 '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단계'를 떠올렸다는 점이다.
그녀의 작품 하나를 읽은 이상 다른 작품들을 다 읽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초에 읽지 않았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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